[기독일보] 인간은 삶속에서 내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누군가 가지고 있을 때 그것에 대해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열등의식을 가지게 된다. 필자가 살아오면서 가장 부러운 사람들을 말한다면 자신이 살 집을 자신의 손으로 설계를 하고 건축하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살아야 할 집이기에 최선을 다하여 집을 짓기 때문이다.
2000년도 미국 오리곤주 동부 베이커시에 위치한 부족 선교단체에서 선교사 훈련을 하는 기간에 필수적인 과정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정글에서 집을 짓고 6주 동안 가족과 함께 생존 훈련을 하는 것이다. 가정을 가진 남편들과 혼자 사는 싱글 선교사 후보생들은 가족이 합류하기 이전에 정글 안에 들어가서 1주일 안에 자신들이 살아야 할 집과 그리고 집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동료들을 위해 협력하여 집을 지어야 한다. 내 손으로 뭔가를 한번도 만들어 본적이 없었던 필자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었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만 한다는 것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열심을 다해 샤워시설, 침대, 난로설치와 야외 식탁을 만들었다. 하지만 어떤 것은 수평을 제대로 잡지 못해 눈으로 보기에도 뭔가 기울어져 보였고 이상하게 보였다. 그 이유는 집을 건축하는 필자가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힘겨운 한 주간 동안 필자가 그 당시에 느낀 것은 집을 건축하는 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집을 건축하기 이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집을 어떤 모형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설계도가 준비 되어야 한다. 이것에 따라 집의 구조가 달라질 뿐 아니라 건축을 하는 비용에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설계는 집을 건축하는데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건물이 하나 들어서는 데 있어서 설계도가 중요하듯이 인간의 삶도 계획을 가지고 목적을 향하여 살아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영적인 삶을 건축하는 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더욱더 값진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한사람 한사람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누구를 만나야 할지를 다 아시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에 생각과 갈등 까지도 다 아시는 분이시다.
복음성가 중에 "나를 지으신 주님"에 관한 노래가 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항상 주의 백성들에게 주님은 "나를 믿고 따르라"고 말씀을 하신다. 여호와는 나의 영을 건축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복의 근원이시기에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영적인 집을 아무도 세울 수가 없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편127:1)
이것은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건물에 중심을 둔 것 같지만 좀더 깊숙히 말씀을 상고해 본다면 외형적인 건물이 아니라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영적으로 나를 세우고 집안을 신앙적으로 세우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존재하고 주님이 삶을 통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가 집을 세우려고 계획한다 해도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는 말이다. 나를 세우는데 있어서 주님이 지켜주시지 아니한다면 영적인 집은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영적인 집을 견실하게 짓기 위해서는 집을 짓는 모퉁이 돌이 견고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마태복음21:42) 이 말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로 부터 일시적인 배척을 당하시지만 주님이 이스라엘 새 성전의 모퉁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성전을 사흘 만에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말씀하셨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이것을 예수님은 입증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인간을 죄에서 자유하게 하는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영혼의 집을 건축하시고 그 집을 구원받은 자들에게 온전히 관리하도록 임무를 부여 하셨다. 이것을 위해 주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믿음을 강조하시고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영혼의 집을 파수꾼처럼 지키도록 명하셨다.
그런데 영혼의 집을 온전히 가꾸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구원받은 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원수인 사단이 시험을 끊임없이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염려와 근심을 계속하고 누워도 잠을 자도 걸어가도 편하지가 못하다. 사람이 삶에 대해 근심을 가지고 두려워하고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영혼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가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127:2) 인간이 살아가면서 늘 편안하게 살아갈 수 는 없다. 그것은 항상 삶에 도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전과 응전의 삶속에서도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데 그것은 곧 "나를 지으신 주님의 사랑"을 알고 그분께 나를 맡기는 것이다.
세상에는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받는 상급을 성공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 내면을 깊숙이 본다면 그 속에는 '부, 권력과 명예'가 있다. 이것을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삶을 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인간은 늘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삶은 내면의 쉼과 안식을 쉽게 맛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영적세계의 집에 거할 마음의 여유를 가질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한 영혼이 온전하지 못하면 그와 함께한 공동체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하나님은 개인의 영혼도 소중히 여기시지만 가정을 이끌며 살아가는 신앙의 공동체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가지고 섭리하시기를 바라신다. 그 이유는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 곧 열국을 하나님 나라의 세계로 만드시려고 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상명령을 이끌기 위해서는 자녀들이 주님의 기업이 되어야 한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 이것을 볼때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과거, 현재와 영원한 나라를 건축하시는 분이시다.
글ㅣ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