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비슷한 나이의 이민 일세들이 매달 한 번 씩 식당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외로움을 달래기도 10년이 지났다.
어느 날 재치 넘치는 정복동 씨는 이런 푸념을 털어놓았다. 자기는 지금까지 남을 위해 살고 있단다. 어려서는 부모님이 학교가라 가라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대학까지 갔고 그 후에는 죽자 살자 따라다니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직장을 얻어 몇년 충성하다 보니 애들을 낳게 되고 낮에는 직장에서, 집에 와서는 애들에게 착실한 아버지로 살다가 미국에 왔다. 미국에 오니 외롭기도 하고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교회에 나가는데 목사님이 주일 마다 예수님을 위해 살라고 하시니 자기는 오나가나 남을 위해 산다는 엄살이다.
누군가 "야, 너만 그러냐? 나도 그렇다" 하자 모두가 배꼽을 잡고 천장이 떠나가게 웃었다. 그 모임의 좌장격인 최ㅇㅇ 선생님은 그 나름의 다른 경험을 털어놓았다. 어려서는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을 헌 신짝처럼 버리라는 일제 말기에 살았고, 해방 후에는 평양에 공산당이 들어오면서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 장군을 위해 살라는 공포 속에 시달리다 6.25전쟁을 만났다. 남한으로 내려와서 천신만고 끝에 가족을 꾸미고 애들을 가지게 되자 그 때부터는 가족에 매여 허덕이다가 미국에 왔는데 더 고달픈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밤 청소부터 시작해서 세탁소까지 30 여년을 죽지 않으면 까무러치도록 힘들게 살며 세 자녀를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보니 이제는 늙은 몸이 되었고 자녀들도 멀리 떠나 외로워져 자기는 누구를 위해 살았나 하고 후회도 했는데 어느 날 그 생각이 180도 바뀌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올 때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구절. 그 목적은 자기를 위한 것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는 데서 눈을 크게 떴다고 한다. 맞다. 지금까지 자기는 부모나 처자식, 직장, 교회 및 사회를 위해 살았지 자기를 위해 살지 못했다는 편협된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일들을 해 낸 것이 자기를 위한 일이 아니었기에 지금은 자신을 너무도 자랑스럽게 여기며 감사한단다. 그 말이 떨어지자 "야, 우리 맞 형님이 최고야" 하니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민 일세들이 그 동안 새 땅에 정착하며 자녀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뛰다가 어느 새 80세를 전후했고 이제는 내 몸을 돌보며 건강하게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온몸이 골병 들어 병원과 약국에 자주 가게 되고 하루 세 번 약을 꼬박꼬박 챙기며 반쯤 누워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상팔자로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만난 김모 씨는 전연 달랐다. 내일이면 90세다.
그는 일찍 이북에서 남한으로 이민 왔고 또 남미로 이민 갔다가 다시 미국에 이민 와서 현재 큰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시다. 그 동안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도 당하고 사업에 실패해서 거지 신세가 한두 번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오늘의 사장이 된 것이다.그 분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건강관리다. 음식은 채식과 과일 그리고 무공해 콩과 현미밥을 주로 드시되 소식하며 꾸준히 운동을 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는다. 말하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50-60대 장년이고 먹는 약도 전연 없다. 두 번째는 남들을 섬기는 자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탁소에 나가 직원들이 오기 전에 점검을 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해서 전 직원들과 같이 먹고 점심도 역시 자신이 제공한다. 세탁소를 30년 가까이 하고 있지 만 돈 버는 것은 차선이고 첫째는 직원들과 손님들을 왕처럼 섬기는 자세다. 가게나 집 주위에 있는 빈터에 채소나 과일을 심어서 그곳에서 나오는 열매를 같이 나누어 먹는다. 또 하는 일이 있다. 자신이 그 어려운 이민 생활에서 체험한 성공의 비결을 다른 분들과 나누는 간증집회에 많이 나가는데 사례비를 반환한다. 그가 영어의 Retired 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타이어를 바꿔 끼웠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내일 자기가 죽는다 해도 오늘 과일 나무를 심어 훗날 누구인가 그 열매를 따 먹도록 한다는 철학이다. 그런 헌신적인 삶을 보는 자녀들도 현재 미국에서 한 몫을 하고 있으며 십여명의 손자 손녀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공부도 잘한다.
하루하루 그 날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일 하시는 김모 어르신을 모방할 수는 없을까? 그 분을 옆에서 뵙기만 해도 따뜻한 온기가 내게 스며든다.
글ㅣ현순호 목사(실리콘밸리노인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