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엄영민 목사] 목회자로서 한 교회를 오래 섬길 수 있는 것은 큰 복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참 복이 많은 목회자이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전도사로서 섬기기 시작한 우리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고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적지 않은 시간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 한 교회를 섬기다 보니 무엇보다 좋은 것은 성도들과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삼십 초반에 우리 교회를 섬기기 시작한 내가 이제 한 두해 지나면 육십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성도들이 어떤 면에서는 피를 나눈 형제들보다 더 가까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육신의 형제들은 몇 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거의 매주에 한번 씩 혹은 그 이상 보기 때문이다. 자꾸 보면 닮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마주보며 살다보니 목회자인 나도 모르게 성도들을 닮아가고 성도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닮아가는 듯하다.
내가 어떤 목사님들처럼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는 목회자는 아닌데 그래도 가끔씩 성도들이 기도하는 내용, 대화하는 내용들을 들어보면 내가 애용하는 단어나 말투들이 그 속에 담겨있는 것들을 본다. 신기하다.그러나 한 교회를 오래 섬기는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성도들이 커가고 자라가고 늙어가고 마침내는 천국가는 모습까지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목회자란 본시 자기 자신의 변화는 잘 모르지만 양들이 변하는 모습은 훨씬 더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씩 성도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속에서 삶과 신앙의 묘한 신비를 느낀다. 내가 우리 교회에서 처음 맡은 직분이 청년부 전도사였는데 그 청년들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이낳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참 교회를 섬기던 장년들이 늙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젊은 부교역자로 섬길 때에 밤낮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던 권사님들은 대부분 이미 천국으로 가셨다. 한 교회를 섬기다 보니 그렇게 소년이 청년되고 청년이 장년되고 장년이 노년되어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는 인생의 여정들이 보인다.
물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런 인생의 여정을 마치면 영원한 안식처로 옮겨가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여정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더 옛 성도들이 남겨좋은 믿음의 교훈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둔 밤 쉬 되리라 한 것 처럼 청년도 잠시요 장년도 잠시고 노년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인생의 유한함을 탄식하고만 있는 사람은 게으르고 악한 자이다.
어둔 밤 쉬 되는 것을 알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기뻐하고 오늘 더 감사하고 오늘 더 충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글ㅣ오렌지카운티제일장로교회 엄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