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최근 한국실천신학회(회장 김충렬 목사) 제55회 학술대회가 부평 카리스호텔에서 개최됐다. 지난 13~14일 한국교회의 실천적 현실과 관련된 학제간 대화를 초점으로 진행된 이번 학술대회에서 소개된 11편의 논문 가운데 윤성민 박사(한신대·서울신대 강사ㅣ실천신학·설교학)의 '독일에서 본 한국사회와 한국교회 -'녹색성장' 안에서의 교회의 영성'을 정리해 소개한다.
윤성민 박사는 먼저 교육공학자 "유영만 교수는 옛날에는 한 우물만 파라고 했지만, 지금은 한 우물만 파다가 매몰될 수 있다면서 융합의 필요성을 말하였다"며 "이 시대는 자신의 전문성과 다른 분야의 전문성이 어떤 점에서 융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융합을 통해서 창출하고자 하는 지식의 본질과 방향이 무엇인지를 꿰뚫어보는 다른 안목과 식견이 필요한 시대이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교회가 복잡해진 현대 사회 안에서 그 역할을 찾으려면 사회학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반정부투쟁이 심했던 군사 독재정권 시대 이후 한국교회는 복잡해진 사회 구조 안에 교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복잡해진 사회 안에서 교회는 그 방향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했고, 사회는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덩치만 커져 버린 교회를 향하여 비판하기 시작했다"며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교회라는 한 우물만 파다가 매몰되어 가고 있는 모습들이 사회의 매스컴을 통해서 비추어지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쏠림 현상을 알아야 한다. 사회학적으로 이런 형상을 동형화(isomorphism)라고 부른다. 토마스 케른(Thomas Kern) 교수는 한국 사회를 연구하면서 규범적 동형화(normative isomorphism)의 메커니즘에 해당하는 신제도론(neo-institutioanl theory)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며 "김영명 교수도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좌우의 이념적 거리보다 큰 문제점은 작은 차이도 조화시키지 못하는 타협 미숙과 통합적 지도력의 부재 그리고 국민의 정서적인 휘쓸림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 한국교회 '롤 모델'로 블룸하르트 부자(父子) 제시
윤 박사는 "교회에서도 이런 형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는 많은 목회자와 중직자들이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어떤 규범에 맞추어서 쫓아가는 경향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러한 규범이나 가치를 보면 사회와 생활 현장에서 예수의 정신을 갖고 성서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힘쓰는 모습보다는 생활 현장은 뒷전에 두고 교회 일에만 헌신할 것을 강요하거나, 심지어는 세속적인 원리가 교회에 적용되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며 "신앙생활을 몇 가지 규범에 맞추어서 믿음과 순종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필자는 교회의 이러한 모습이 바꾸어지기 원하는 마음에 블룸하르트 부자(父子)를 한국교회의 롤 모델로 소개한다. 블룸하르트 부자의 신학에는 한국교회의 목회자가 선호할 만한 사건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블룸하르트 부자는 칼 바르트, 하르낙, 위르겐 몰트만와 같은 수많은 신학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신학적 자극을 주었다. 아들 블룸하르트는 라가츠가 종교사회학을 태동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아버지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Johann Christoph Blumhardt)의 생애를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며 "사역 초반의 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영혼 구원을 위해서 영혼을 향한 구령의 열정으로 사역하였다. 이 시기의 설교는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며 "그런데 1848~1849에 유럽에 휘몰아쳤던 혁명을 겪으면서 그는 '하나님은 사회와 정치 안에서 새로운 테두리를 만드신다(Gott schafft neue Rahmen in der Gesellschaft und Politik)'면서 입헌군주제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윤 박사는 "그는 그 시대에 예언자적인 역할도 하였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으로 독일 베를린에서도 3월 혁명이 일어나 봉건적 체제를 타파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혁명은 독일 내부의 민족주의적 문제와 농민-노동자 계급이 정치세력화하는 데 실패하여 성공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 블룸하르트는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 편지를 써서 입헌군주제를 도입해서 소시민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충언한다. 그 당시 독일에는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단어조차 없었다"며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는 혁명 때문에 유럽 전 사회가 흔들렸던 시기를 사회적 변혁을 위한 과도기로 보았다. 블룸하르트는 나라가 혼란한 시기를 하나님의 때이고 역사가 진보할 수 기회로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회와 정치의 새로운 틀을 만드시기 위해서 이런 혼란한 시기를 겪게 한다고 말하였다"고 했다.
그는 또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의 노력은 헛되이 끝나지 않았다. 역사는 발전하면서 독일제국은 1871년 제국의회 선거를 통해서 입헌적 요소가 가미된 절대군주제를 이루게 된다"며 "한국교회가 외치는 부흥에서 블룸하르트처럼 민주주의를 함께 외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게 되면 필자는 고 대천덕 신부님의 말씀대로 개인복음과 사회복음의 균형을 이룬 온전한 복음이 한국사회에 능력있게 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세계와 절연하고 하나의 겟토(ghetto)에서 찬란한 고립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세계에 직면하고 세계를 용납하며 세계의 곤경과 희망에 참여하고 세계의 모험과 좌절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세상이야 어떻든 상관없는 교회가 아니라 사랑으로 세상과 맺어진 교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요구라면 세상에 대항과 항의도 할 수 있다. 또 대항과 항의야 말로 세상과 함께 머물기 위함이다. 세계 안에서 세계와 함께 세계의 일을 참여하는 것, 세계와 유대를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이것은 교회가 받은 은혜요 또 따라서 교회의 과업이다"며 한스큉의 '교회란 무엇인가'를 인용하며 강조했다.
덧붙여 "교회는 세계에 책임을 짐으로써 세계를 위해서 존재한다... 세계는 스스로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교회의 형제적 도움을 필요로 한다. 세계를 위하여,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공동책임을 지는 것,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책임을 지는 것, 이것은 교회가 받은 은혜요 또 따라서 교회의 과업이다"고 했다.
■ 하나님의 역사하심 기대하는 '믿음의 행위'
그는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고트리빈 디투스(Gottliebin Dittus)의 영적 투쟁이다. 1842년 4월부터 시작한 이 사건은 무려 1년 8개월 동안 지속한다. 이 영적 투쟁은 1843년 12월 24~28일에 절정에 이른다. 고트리빈 디투스의 여동생인 카타리나(Katharina)의 입에서 다른 목소리로 '예수는 승리자이다! 예수는 승리자이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오면서 이 영적 투쟁은 끝났다"며 "이 사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회개하였고 뫼틀링겐(Mottlingen)에 부흥이 일어났다.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는 이때부터 '예수는 승리자!'라는 주제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절의 그의 모토인 '예수는 승리자!'는 한 개인 안에 있는 악에 대한 승리의 표현이었다.
또한 "이 영적 투쟁에서 블룸하르트는 기도와 금식 그리고 성서 읽기만 했다. 블룸하르트의 이런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후에 세상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다림과 서두름으로 확대된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은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역사하신다"며 " 칼 바르트(Karl Barth)는 이것을 믿음의 행위라고 말한다. 하나님만이 하나님 나라의 원천이자 능력이시다. 하지만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순종적인 행위가 그 역사의 장소가 된다. 블룸하르트는 믿음과 행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보았다. 이것이 경건주의의 좋은 모습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뫼틀링겐의 영적투쟁에서 아버지 블룸하르트가 철저히 깨달은 것은 자신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역사 가운데 지금 여기로 뚫고 들어오는(inbreaking) 하나님 나라를 체험한 것이다. 블룸하르트는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에서 그 역사의 터전을 만들었다. 블룸하르트 신학의 중심에는 희망이 스며져 있다"며 "희망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우리의 행동이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진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탄식을 해야 하고, 기독교인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Johann Christoph Blumhardt)의 투쟁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기도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금 여기로 뚫고 들어오는(inbreaking)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한다"며 "블룸하르트가 강조한 것처럼 한국교회는 희망 가운에 '기다림과 서두름'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 희망의 영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블룸하르트, 사회적 치유와 생태학적 회복 위해서도 탄식
또한 그는 "블룸하르트는 육체적 치유뿐만 아니라 사회적 치유와 생태학적 회복을 위해서 탄식하였다. 교회의 강대상에서 복음의 사회적 지평을 넓혀야 하듯이 공동체와 생태계의 회복을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며 "한국교회가 생태학적 영성에 관심을 두는 일은 당연하다. 필자는 브루더호프(Bruderhof) 공동체를 체험하면서 이러한 일들이 가능하고 생각한다. 블룸하르트의 영향을 받은 공동체가 브루더호프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독일에서 1930년대 일어났던 산업주의를 반대하여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기독교 공동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말테 교수는 생태학적 위기에 놓이게 된 책임을 우리 기독교인에게로 돌린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그 창조보전을 위한 특별한 책임 맡기셨다고 말한다"며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는 모든 피조물의 아픔에 대해서 탄식하였다"고 했다.
윤 박사는 "융합은 제3의 길을 제시하고 실천할 때 완성된다. 시민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예언자적 역할은 국가적 이슈와 제도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문화와 상황까지 그 범위를 더욱더 넓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을 언급하며 "한국사회의 막연하게 펴진 큰 문제점으로 책임윤리의식의 부재와 안전불감증을 생각한다. 사회운동가 박상은 선생은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날 갑자기 침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세월호는 지난 10여 년간 운항관리에 필요한 업무 예산을 줄이고, 선령 규제를 완화하고, 선사와 선주 책임을 줄이고, 과적을 묵인해 온 기나긴 시간 동안 서서히 침몰한 것이라고 말한다. 연안여객석 대형사고가 20년마다 '과적과 과승', '배의 복원력 상실'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대형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정부와 관련 부처가 안전규제를 강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그래서 원전이 걱정된다. 기술력과 데이터에만 의존해서 안전을 외칠 것이 아니라 원전에 대한 안전규제를 더욱더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핵폐기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확한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은 독성화학물질조차도 관리가 미흡한 상황이다"고 우려했다.
윤 박사는 "설교자들이 강대상의 폭을 넓혀서 이런 문제점들을 교인들에게 충분히 공감시키고 교육을 할 수 있다면 한국사회는 교회를 통해서 성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의 행동은 투표로 나타내야 한다"며 "한국사회에서 교회가 아직도 제3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복음 전파가 우선인 교회에서 시민 사회를 책임질 성숙한 시민까지 길러낸다면 다시금 교회는 한국 사회에서 희망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