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김칠곤 목사] 부모들이 자녀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자식들은 품안에 있을 때 좋은 것이지 성장하여 멀리 떠나면 관심이 덜해진다고 말을 한다. 이러한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할 때 외형적으로 이제 자식이 다 컸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실상은 부모가 눈을 감을 때까지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마음속 한 구속에서는 끊임없이 자식에 대한 염려를 하게 된다. 그것은 '자식들이 어디가 아프지 아니한가?', '밥은 잘 먹고 살아가는가?', '직장에는 잘 다니는가?'에 대한 것들이다. 이렇게 부모들이 자식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내 배속에서 낳은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마음속에 자신이 아픈 것과 같은 고통을 갖게 된다.
자식이 살아가는데 힘든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힘든 것을 내색하지 아니하려는 자녀를 부모가 볼 때 참으로 대견하게 느낀다. 그런데 부모는 자식이 자신의 문제를 혼자 이겨내는 것보다 때로는 육신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아픔들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부모가 자녀를 대함에 있어서 걱정이 되는 부분의 하나는 모든 것을 자녀가 혼자서 끓어 앉고 가려는 것이다. 성숙된 인격을 가지고 자녀가 스스로 아픔을 견뎌내며 홀로서기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부모를 위한 것이라고 말을 한다면 자신의 성격을 좋게 포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언젠가 필자가 교회에서 가르쳤던 청년이 나이가 들어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힘이 들고 괴롭다고 하여 전화로 한참을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목사님 나 너무나 힘이 들어 마음이 아픕니다.", "나의 마음을 어느 누구하고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 사람과의 관계가 정말 어렵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그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하나의 서양 속담이 떠올랐다. "고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참고 견뎌야 한다.(What cannot be cured must be endured),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한다.(What cannot be escaped must be embraced)"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내면 반드시 거친 폭풍이 사라지고 희망의 빛이 주어질 것이라는 위로를 해 주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어떠한 격려보다는 그의 아픔을 들어 주는 것이었으며, 그의 삶의 아픔을 내가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더욱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아픔을 듣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삶이 어려워지면 누구라고 말할 것 없이 삶의 버거움으로 인해 '짜증, 분노, 슬픔과 외로움'을 입 밖으로 표출하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얼굴로 표현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외형적으로 볼 때 어두운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을 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죄 와는 무관하다. 죄(罪)란 이러한 것들이 통제되지 못하여 행위를 통해 누군가를 가해하는 것이며 마음속 깊은 곳에 쓴 뿌리를 자라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면 그 아픔을 들어줄 누군가에게 쏟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에게나 쉽게 자신의 내면의 고통과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눔이라는 것은 그것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주님의 더하심, 나의 미약함(More of Jesus, Less of Me)"이라는 책에 보면 뚱뚱한 사람이 체중을 줄이는데 있어서 자신의 아픔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그 이유는 오히려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식은 나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전달하지 않기에 음식을 먹는 것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보다 더 좋다. 그래서 살이 더 찐다 라는 저자의 고백을 본 일이 있다. 그런데 그가 다이어트를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두려움과 아픔을 하나님께 나눈 것이다. 그 이유는 혼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지도자 모세가 있다. 그는 2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그들과 함께 동거동락을 한 훌륭한 지도자 이었다. 그런데 광야라는 곳이 안전하지 아니하고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아니하여 날마다 백성들로 부터 불평불만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과거에 애굽의 생활을 동경하여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을 보고 모세는 마음속에 많은 스트레스와 갈등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속에 고통의 아픔을 하나님께 항의를 하듯이 뿜어낸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하라 하온 즉"(민수기11:11,12) 그리고 그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울며 하나님께 호소한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게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수기11:15) 모세는 하나님이 전능하시기에 자신의 마음속에 괴로움과 고통을 다 아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혼자 모든 것을 짊어 질 수 없기에 자신의 마음속에 생각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은 것이다. 이것을 기뻐하신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모세의 문제들을 다 들으시고 그것들을 해결해 주셨다. 그것은 칠십명의 장로와 지도자들을 세워 모세가 혼자 짊어진 짐을 나누어지도록 가르쳐 주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코에 고기 냄새가 나서 질리도록 한달 동안 고기를 주셨다. 그리고 모세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의 경영을 보라고 위로를 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수기11:23) 그 후로 모세는 자신의 아픔을 견뎌내고 더욱더 강한 리더십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서게 된다.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A.S. Pushkin)의 시 가운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나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려움을 이기고 나면 더 큰 기쁨이 주어진 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의 감격은 혼자 힘으로 맛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나의 미약함, 분노, 괴로움과 좌절을 해결해 주고 들어주실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삶의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려놓고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 저 지금 너무나 아픕니다.", "주님 도와주세요"이것은 삶의 수치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으로 부터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 비결이다.
글ㅣ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