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는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가 지난해 11월 25일 개최된 '초기한국성결교회 인물연구 프로젝트' 제1회 길보른기념강좌에서 서울신대 목회신학연구원 원감 박문수 박사(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위원)가 발제한 '어니스트 길보른(Ernest A. Kilbourne)의 생애와 선교사역'을 10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날 박문수 박사는 어니스트 A. 길보른의 선교정신을 ▲기도의 능력 ▲토착민 전도자 양성 ▲순복음 전도 '세 가지'로 정리했다.
길보른 선교사의 '순복음 전도' 의 선교정신을 설명하며 박 박사는 "어니스트 길보른은 '한국과 순복음'(Korea and The Full Gospel)이란 기고문을 통해서 순복음 전도를 강조했다. 그는 '러일전쟁 이후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종노릇하게 될 것을 예견하면서, 한국에 있는 수많은 마을과 도시를 다니면서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에게 순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강하게 느꼈다'고 언급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길보른은) 한국인들의 관습을 통해서 순복음, 온전한 구원의 은유를 발견했다. 첫째는 평양거리의 젊은 숙녀들이 큰 모자를 썼는데 그것은 젊은 남자들의 부도덕한 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했다"며 "둘째는 한국인들은 흰옷을 입고 있다. 그래서 흰옷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힘들게 빨래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척도는 천국의 옷을 입는 것이다"고 전했다.
박문수 박사는 "우리의 영혼은 예수의 보혈로 깨끗해 진다. 만일 죄가 들어오도록 허락하면 얼룩과 흠이 생기고 멸망을 초래한다. 우리는 깨끗하며 순결하며 거룩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했다.
또 "셋째 애곡하는 한 남자는 장례식의 관습에 따라 얼마동안 입어야 하는 외출복에서 발견했다"며 "그는 비석을 붙들고 울고 그의 모습은 죽은 자에 대한 존경의 외적 표현이다. 그러나 상처는 가슴속에 있다. 옷은 그것을 숨기고 눈물은 말라버리겠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상한 마음을 치료'하실 수 있다. 예수님도 '상한 심령들을 치료하도록' 성부가 보내셨다(눅 4:18)"고 했다.
또 박문수 박사는 길보른 선교사의 감격스런 선교보고를 소개했다.
"한국의 어디에선가 성령사역이 있을 지 모르겠다. 물론 성령의 부어주심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발견했고, 일요일마다 사람들로 가득한 큰 교회들을 보았으며, 수요일 밤 기도회에 1천 명이 참석하는 것도 들었다. 그러나 순복음 사역에 관하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이러한 사역의 기초는 토착민 사역자들에게 성령이 채워져야 한다. [...] 우리는 한국인을 사랑하는 법과 그들의 구원을 위해 열망할 것을 배웠다. 오늘날 그들은 복음으로 무르익었다. 따라서 당장에 순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박문수 박사는 길보른 선교사가 한국성결교회에 끼친 영향을 정리하며 "길보른가(家)의 선교활동은 한국성결교회에 소중한 사랑의 빚을 남겼다. 한국성결 교회에 빚을 안긴 길보른 가의 첫 번째 사람은 어니스트 A. 길보른(Ernest Albert Kilbourne)이었고 그는 1907년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창립할 당시부터 가장 빈번하게 한국을 방문한 사람이었다. 또한 동양선교회의 한국사역을 직접 지휘한 사람이기도 했다. 1921년부터는 한국에 거주하면서 감독 겸 경성성서학원장으로 활동했다"고 그의 한국 사역을 요약했다.
또한 "그가 카우만에 이어 제2대 동양선교회 총재로 일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 후 그의 아들인 E. L. 길보른이 한국사역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그의 손자들이 한국에서 활동했는데 에드윈 길보른은 서울신학대학 학장으로, 엘마 길보른은 각종 사회복지 사업으로 한국사회와 한국성결교회의 부흥에 기여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는 "이와 같은 길보른 가의 선교활동에 대한 평가는 전 서울신대 총장인 고 이상훈 박사의 '길보른 가의 공헌'(1987)이라는 글속에서 확인된다"며 소개했다.
"나는 E. L. 길보른과 두 아들 에드윈 길보른 박사와 엘마 길보른 박사에 대한 즐거운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 이 세 분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교훈을 주셨다. 아버지 길보른 목사님은 열정적인 개척자적 선교사였다. 에드윈 길보른 박사는 자신을 잘 표현할 줄 아는 탁월한 학자였다. 그리고 엘마 길보른 박사는 한국전쟁 기간에 고아원들을 설립한 사람이요 고아들의 아버지로서 수많은 배고픈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는 기독교의 사랑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 스승(master)이라 표현할 수 있다. 이 귀한 선교사 가정은 서울신학대학교 캠퍼스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으며, 대다수의 한국성결교회 교인들로부터 불멸의 찬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