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희 기독일보·선교신문 기자] "한국문화는 귀로 듣고, 머리로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조차도 실제에 기초하지 않거나, 아는 것을 실행하는 단계에까지 가지 않으면 '인재'가 반복됩니다.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경험,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의 역량 안에서 위기를 예측하고 예방해야 합니다."
사단법인 한국위기관리재단(KCMS)이 지난 4일 오후 3시 남서울교회 비전센터 2층에서 재단창립 4주년 기념 위기관리포럼을 열었다. 이번 포럼에는 선교단체 대표를 비롯해 위기관리 및 멤버케어 담당자, 선교목사, 선교위원장 등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교사 위기관리의 현황과 문제점을 나누고, 위기관리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발표됐다. KCMS는 2007년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KWMA 위기관리국(CMS)으로 출발했으며, 이후 2010년 12월 사단법인 KCMS로 출범했다.
KCMS 산하 위기관리연구소장 도문갑 목사는 '위기관리를 위한 핵심정책 모델'에 대한 발표에서 "위기는 문화, 체질, 정서이며 깊이 들어가면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며 "모든 위기와 재난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적 사고가 아직 우리 의식에 깊숙이 영향을 주고 있어 사회를 개조, 변화시키려는 주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를 변화시켜야 할 기독교도 힘이 약한 상황에서, 위기관리의 기반과 기초를 튼튼히 세우는 정책과 이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 목사는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사를 다 주관하시지만, 많은 경우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와 청지기적 사명을 가지고 선교사들을 보호, 관리한다는 철학과 정책을 위기관리의 기반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위기관리의 기반과 기초가 성경적 바탕에 굳건히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위기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를 사전에 예측하고 예방,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생기기 전 피하거나 예방해서 피해를 경감시킬 수 있으나 일단 발생하고 나서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라며 "위기 예측이 되지 않는다면 위기관리 시스템도 소용 없다"고 말했다.
이어 도 목사는 "현장 사역자들에 대한 위기대비 교육, 훈련은 단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고 효과적인 사전 조치"라며 "위기관리를 위한 교육, 훈련에 1의 비용을 투자한다면, 위기 시 10의 유익을 얻지만, 아무런 대비나 투자가 없다면 그 손실은 기본 100에서 시작해 천문학적 규모로 증폭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 목사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은 위기에 대한 교육훈련이나 위기관리 시스템 수립을 소홀히 할 때 단체, 교회 등에 일어날 수 있는 막대한 손실을 빗대어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이라고 덧붙였다.
또 위기 시 조직을 보호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사전에 '기능적 전문조직(위기관리위원회, 위기관리팀 등) 구성', 특정지역에 대한 위험과 위협을 예측하고 현실적인 비상계획을 준비·유지하는 '비상계획', 위기발생 시 가장 중요한 초동 대응 등 신속한 '보고체계' 가동, 현장 사역자들에 대한 '위기대비 교육·훈련', 평상시 '위기기금과 비상금' 확보도 위기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소개했다. 이 외에도 위기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철수, 납치와 인질, 정보의 관리를, 위기 후 관리 정책으로는 멤버케어, 평가 작업과 보완 등을 들었다.
KCMS 위원 나희동 사이버로지텍 팀장은 'IT/SNS 정보 보안관리 지침'에 대한 발표에서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IT/SNS 정보 보안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IT 교수요원으로 자비량 사역을 하던 선교사들 중 한 명이 한국에서 선교보고를 한 것을 정부가 발견, 그와 친한 이들을 2년 내 모두 추방한 사례와 이슬람권 선교사가 자신이 그날 한 일과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례 등을 들며 특히 "페이스북, 트위터 등 외국에 서버가 있는 곳은 정보 보안에 더 취약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소셜네트워크가 다 오픈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또 "창의적 접근지역 선교사들은 선교명과 여권명을 철저히 분리할 것"을 요청했다.
나희동 팀장은 "IT/SNS 정보 보안관리에서 가장 고민할 것은 기밀성, 무결성, 가용성"이라며 "선교 경로, 만난 사람들을 전부 기록으로 남긴 바울과 사역 기록이 거의 없는 요한을 보며 자신의 사역지, 사역 목적에 맞게 일관되게 정보관리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예장고신 멤버케어위원회 위원 류영기 목사는 '선교사 멤버케어 지침'에 대한 발표에서 "1980년대 타문화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첫 세대 선교사들이 한 사이클(선발, 파송, 사역, 안식년, 은퇴·재입국 등)을 마치고 은퇴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작년 만 65세로 조기 은퇴한 후 4백여 교단 선교사의 멤버케어를 돕는 그는 "멤버케어 시스템의 범위는 선교사 선정 기준, 검증 도구, 훈련과 오리엔테이션, 배치, 위기상황, 본국사역과 일시 귀국, 독신 여자 선교사와 선교사 자녀, 본국에 남은 부모들, 은퇴선교사 등까지 매우 포괄적"이라고 소개했다. 또 "멤버케어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개인의 시스템화와 선교단체의 조직적, 정책적 시스템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잘 케어하지 못하는데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놓인 선교사들을 본다. 하나님의 케어는 끝이 없다"며 "멤버케어에 대한 장을 함께 넓혀 공동체적인 연합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CMS 노성경 연구원은 '긴급철수·추방선교사 지침'에서 "보통 긴급철수에서 시작해 추방으로 연결된다"며 "대개 선교사 추방은 민족적 사건, 대통령 선거 등 국가마다 특별하고 민감하게 생각하는 흐름이 있을 때, 법적으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하고 떠나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기봉사팀으로 인한 선교사 추방도 일어나고 있다"며 주의를 요청했다.
노 연구원은 "추방과정 중 선교사들은 추방 정보를 가족이나 선교단체, 파송교회, 후원교회 등에 신속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보를 바로 전달하지 않으면 선교사와 관련자들과의 신뢰관계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추방 이후에는 추방에 대한 과정을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필요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선교 동원에서부터 나라 개념이 부각될 때, 선교사 추방 사실은 그 나라 전체를 잃은 느낌이 들게 한다"며 "종족개념으로 동원을 바라보면 오히려 추방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선교사 추방 국가에 신임선교사를 보내기 전 추방 관련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고, 종교법 연구팀이 따로 있는 IMB(미국남침례회 국제선교회)처럼 자주 바뀌는 종교법에 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충분히 위기 예방 및 예측, 후속조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GP연구개발원 원장 이용웅 선교사는 '선교사 순교/순직 지침'에 대해 "위기관리의 마지막 정점은 죽음을 다루는 부분"이라며 "복음을 전파하다가 박해를 받거나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 순교와 순직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아 용어상 인플레이션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든 선교사는 출국 전 유언장, 장례계획서를 작성하고, 현지에 도착하기 전 현지 팀 리더에게 복사본을 전달해야 한다"며 "훈련 과정에서부터 순교, 순직, 장례절차까지 제대로 다루는 것이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지만, 사전에 잘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선교훈련 시 유언서 작성이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며 "전체 내용을 친필로 작성하고 이름, 주소, 서명, 날짜까지 있어야 법적 효력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시키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WMA 행정총무 서정호 목사는 '선교단체 위기관리 평가 지침'에서 "선교단체들의 위기관리 상황과 실태를 주기적으로 점검, 평가, 공지하여 위기관리 의식을 고취하고 위기관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한국교회 파송 선교사들의 신변 안전과 건강한 선교사역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KCMS 구자범 위원(JBN보험중개)은 '선교사 보험관리 지침'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상해, 질병,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 때 보험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라며 "생명보험, 손해보험, 연금보험은 선교사에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 이박행 원장은 '건강·의료 위기관리지침'에서 "선교사들이 하나님께서 건강을 책임지시니 사명만 잘 감당하면 된다며 열정에 불타왔는데, 병중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특히 선교사 중 암환자가 많은 것을 보며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선교사 허입 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건강을 검진할 뿐 아니라 질병이 있는 경우 별도 관리해야 한다"며 "선교사는 식습관, 스트레스 등에 취약한 구조라 국가 암 검진 프로그램의 연령보다 5년 정도 앞당겨 암 검사를 받도록 권고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암환자 선교사의 70%는 생활습관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며 "몽골의 기름진 음식, 중동의 튀긴 음식 등에 수년간 노출될 시 중년기 발병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론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선교사들은 현지 문화와 함께할 뿐 아니라 이들 문화를 하나님의 창조 원리로 이끌어주고 되돌아가게 해야 할 것"이라며 "창세기 원리가 근본적인 몸 돌봄의 세계관의 기초"라고 강조했다.
GMP 정서운 선교사는 '위기기금·비상금 운용지침'에서 "위기관리를 많이 생각해도 재정이 뒤따라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선교단체는 다양한 위기상황에서 소속 멤버들의 신변 안전과 사역 회복을 위해 미리 위기기금을 조성해 놓아야 하며, 교회도 선교사 위기관리 재정정책에 대해 공유하여 위기기금을 비축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역비, 생활비가 부족해 비상금 비축을 상상도 못하는 선교사들은 송금받는 날까지 어느 정도 비용은 남겨져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으면 좋겠다"며 "위기상황에 재정이 없어 이동,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선교단체도 개인 비상금 정책을 정하고, 이를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선교사는 특히 "본부 멤버는 위기관리 재정 훈련에 간간이 참여할 수 있는데, 현장 멤버는 훈련이 거의 안 된다"며 "현장에서 위기관리 훈련이 부족한 이유는 재정적 이유가 큰 만큼, 이 부분을 아까워하지 말고 투입해야 하며, 현장 위기관리 훈련을 연합으로 진행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날 KCMS 사무총장 김진대 목사는 '선교사 일반 보안 지침, 안전관리 지침, 자기진단 체크리스트'에 대해 발표하기에 앞서 위기관리지침서 재개정 작업을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2003년 도문갑 목사님이 만든 '선교사 위기관리 지침'이 있었으나 벌써 10년이 지났고, 2007년 아프간 사건을 계기로 보완이 많이 필요했다"며 "동시에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IT 보안 환경에 적응하고, 여러 교단과 선교단체, 지역교회의 요구에 의해 재개정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진대 목사는 "5년,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며 한국교회가 위기관리의 디딤돌을 삼을 것을 만들자는 의지로 작년 6월부터 태스크포스팀(TFT)이 모였다"며 "이런 사업이 한국교회와 선교계의 지원이 아닌 일부 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시작돼 아쉽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국내 교회와 선교단체가 선교사를 보내는 데만 열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위기관리와 멤버케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며 "오늘 발표된 내용은 2달간 더 보완해서 2월 말 선교사 위기관리지침서로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