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태고지 세폭 제단화(부분, 중앙패널)ㅣ로베르 캉팽

[기독일보=강정훈 교수] 12월이 되면 우리는 다시 기다린다. 그 분은 약속하셨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Yes, I am coming soon.)" 갈릴리 사람들이 쳐다보던 그 하늘에서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들려주셨다.

크리스마스로부터 4주 전부터는 교회절기로는 '대림절'이다. 대림절(待臨節, Advent)은 '오다'라는 뜻의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하였으며, 강림절 또는 대강절이라 부른다.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즐겁게 기억하며,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쁘고 엄숙한 교회절기이다. 교회력은 대림절로 시작하기 때문에,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뜻도 있다. 대림절에 사용하는 예전색은 기다림을 뜻하는 보라색이다

대림절에 즐겨 묵상하며 감상하는 성서화는 예수의 초림(첫 번째 오심)을 예고한 수태고지화와 세상 끝날 예수의 재림(마지막 다시 오심)을 기원하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Come, Lord Jesus)"를 표현한 성서화이다.

수태 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 )란 마리아가 성령에 의해 예수를 잉태하였음을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알려 준 일을 말한다. 중세 성서나 기도서와 성무일과서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아름다운 채색 메뉴스크립트가 전해지고 있으며 르네상스 화가들도 대부분 수태고지 장면을 그린 작품을 남기고 있다.

수태고지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분관인 클로이스터스(The Cloisters) 미술관에 소장 중인 로베르 캄팽의 메로데 제단화(Merode Altarpiece) 라 하겠다. 15세기 초반에 플랑드르에서 제작된 세 폭 제단화이며 메로데는 최후 소장자 이름이다.

▲수태고지 세폭 제단화(Annunciation, Merode Altarpiece)ㅣ로베르 캉팽(1427~32, Robert Campin and Workshop, 64.5 x 117.8 cm)ㅣ플랑드르ㅣ클로이스터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Cloisters, New York)

중앙 패널은 수태고지 장면을 묘사했다. 수태고지란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눅1:30)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일러 주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북유럽회화의 매력인 영롱한 화면에는 많은 상징이 들어 있다. 마리아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책과 두루마리가 놓였는데 이는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를 상징한다. 화병에 꽂은 흰 백합화와 벽에 걸린 흰 수건과 물주전자는 모두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한다. 그리고 백합꽃이 세 송이인 것은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왼쪽 벽면의 동그란 창을 자세히 보면 작은 아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마리아를 향해 금빛 광선과 함께 내려오고 있다. 그 밝은 빛은 아직 가브리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마리아의 붉은색 겉옷 가운데에 집중되고 있다. 잉태의 상징이다. 그와 동시에 테이블 위의 양초는 연기를 피우며 꺼지고 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촛불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붉은색 의복은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과 피를 상징하며 기대어 앉은 보료의 푸른색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배색이다.

오른쪽 패널에는 목수일에 열중하고 있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그려져 있다. 요셉은 전통적으로 늙은 모습으로 그린다. 수태고지에 요셉을 넣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요셉과 함께 있는 여러 공구들은 예수 수난에 많이 등장하는 도구들이다. 그리고 창 너머엔 꼭대기 층을 삼각형으로 한 북유럽 특유의 집과 도시의 풍경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세 폭의 제단화 중에서 왼쪽의 무릎 꿇고 있는 이들은 이 그림의 주문자 잉겔브레히트 부부이다. 제단화는 메뉴스크립트에 비해 값이 다소 저렴할 뿐 만 아니라 그림에 자신들의 모습을 넣을 수 있어 신흥 상인들이 선호하는 주문 작품이었다.

▲클로이스터스(The Cloisters)의 '중앙 회랑'

클로이스터스(The Cloisters)는 뉴욕 워싱턴하이츠의 포트 트라이언 공원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분관으로 1930년대에 건축되었는데 그 모양은 중세 유럽 시대의 수도원의 건축 양식을 모방하여 디자인되었다. 서양 중세 미술 및 건축 관련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원래 클로이스터(cloister)는 수도원이나 대성당에 부속되어 있는 보도나 통로 자체를 일컫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수도회의 교회당을 뜻하며, 종교적 목적을 위한 은둔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 해 동안 세상일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온 우리는 이 마지막 달 어느 날에는 우중충한 수도원 중앙 회랑을 천천히 돌아 은둔자들이 묵상하던 그 방에서 조용한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 꿈을 가지게 된다.

▲강정훈 교수(전 조달청장)

■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지난 2011년에는 35년여간 모은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을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는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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