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상당수의 신자들에게 있어서 영적 공복과 피폐함을 가져다 주는 것들은 거창한 범죄나 정욕적 일탈과 같은 것에서 말미암는다기 보다는 어쩌면 이 세상의 식탁에서 끊임없이 집어 먹는 각종 부스러기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25일 신반포중앙교회(담임 김성봉 목사)에서 열린 샬롬나비 토마토 시민강좌에서 '탐식, 몸의 숭배냐 생명나눔이야?'를 주제로 강의한 고려신학대학원 신원하 기독교윤리학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에 인터넷 방송 가운데서 소위 먹방 방송이 무려 500개가 넘는다고 한다"며 현대인의 '탐식'을 지적하며 '탐식(貪食, 음식을 탐냄. 또는 탐내어 먹음)'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과 극복 방법에 대해 논하며 이같이 말했다.
신 교수는 "탐식을 가볍게 취급하기 쉽지만 이것은 일종의 우상 숭배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탐식자를 '배만 섬기는 자들'(롬 16:18)이라고 했다. 이렇게 몸과 생활이 길들여지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 양식으로 영혼을 채우려는 것에는 덜 신경 쓰게 되기 마련이다"며 이를 "영혼의 공복감이 옅어져 가게 되기 때문이다"고도 표현했다.
특히 신 교수는 '탐욕' 외에 '일상성'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뒷전으로 하게 하는 주요한 이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신원하 교수는 "누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이 비유를 드시면서,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산 밭, 소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또 결혼한 아내 때문에 가지 못한다고 거절했다"며 "이 이유들은 모두 지극히 일상적인 소소한 것들이다. 결국 이런 작은 부스러기들 때문에 영혼의 대 동맥이 막히고 탁해지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들은 그 자체가 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에 마음이 조금씩 더 가면 이것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대체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신원하 교수는 '탐욕'은 '정욕'을 낳게 한다는 중세 시대 인물들의 주장도 덧붙였다.
신 교수는 "6세기 그레고리우스는 탐식은 "어리석은 희열, 무례, 지나친 수다, 음란, 그리고 감각기능의 둔화"라는 딸을 낳는다고 했다"며 "에바그리우스는 탐식은 '정욕의 어머니'라고 했다. 탐식하게 되면 지성이 흐려지고 욕정이 고조되어 행동이 난잡해진다고 보았던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거는 "실제로 그의 제자인 카시아누스는 그 누구보다도 이것에 대해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편 수도사이다. 그는 육체에 속한 죄 중에 탐식이 먼저 오고, 그 다음 정욕이 오는데 이들은 사슬에 연결된 것처럼 앞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반드시 그 다음 욕망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욕구가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되면 죄가 된다고 보았다. 즉 죄란 '지나친 욕망'이라는 것이다"고 전했다.
또 "아퀴나스도 동일하게 탐식이 정욕을 일으킨다고 경고했다. 그는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좇기를 그쳤을 때, 배불리 먹고 술에 취하며 그리고 음행을 일삼았음을 경고했던 구절(호 4:10)을 인용하면서, 탐식은 일반적으로 정욕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배부르고 기분이 좋으면 어리석은 말들과 너저분한 행동이 돌출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수도원의 규칙 중에 식탁에서는 늘 말을 삼가고 성경을 읽는 것으로 식사를 끝냈다"며 '탐식'으로 인한 죄들에 대한 경계심을 놓지 않았던 중세 수도원의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다.
신원하 교수는 마지막으로 '탐식의 극복 방법'을 제안하며 "내적 자아가 채워지고 만족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라며 '근원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당수의 사람은 마음이 허전해 있고, 낙이 없기에, 먹는 것으로 채우고, 이를 통한 감각적 포만감과 즐거움에서 심리적인 보상을 얻고자 하는 삶을 습관적으로 산다. 따라서 이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음식을 둘러싼 기술적인 대처법으로서 대처하다가는 다시 되돌아가기 십상이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항상 영적인 허기를 갖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 허기를 종종 육신의 양식을 통해 채우려고 한다"며 "탐식을 극복할 수 있는 근원적인 치유책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맛보고(시34:8), 그것을 더 즐기도록 만들어서, 식도락의 식습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고 전했다.
그는 "수도원장 카시아누스는 수도사가 꿀벌처럼 영적인 꿀을 찾아다니며, 영적 덕목을 빨아 내면을 채우게 되면, 탐식에 쉬 넘어가지 않게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를 위한 실제적인 훈련으로서는 금식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소개하며 "생활에서 때때로 음식을 끊고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신령한 것을 바라고 그것에서 오는 즐거움에 보다 집중하는 것이다"고 '금식'을 소개했다.
그는 "금식은 일정 기간 동안 음식을 끊어 자신 몸을 지탱하는 에너지의 근원을 차단하는 일종의 자기 부인의 행위이다"며 "성경과 교회의 역사 가운데서 믿음의 영웅들은 공동체적으로 개인적으로 중요한 시점과 중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금식하며 기도하곤 했다. 하나님께 집중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신원하 교수는 또한 "그레고리우스는 탐식을 극복하는 최상의 훈련은 구제를 통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며 그는 음식을 금하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는 연습을 하는 것이 몸의 욕망을 다스리는 훨씬 효과적인 훈련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설명하며 "음식을 먹을 때 마다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이, 가난한 자들 입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하고, 그렇게 할 때, 과도하게 나의 입에 넣는 것을 꺼리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며 "수도사들은 음식을 몸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양만으로 먹고, 떼어 남긴 그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연습해 왔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식은 자기 식욕을 절제하여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을 키우는 훈련의 방편이었지만 동시에 가난하고 배고픈 자들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이기도 하였다. 4세기의 수도원장 카시아누스도 금식 자체보다는 그것이 선행의 방편이 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신 교수는 "그레고리우스는 금식을 하고, 배를 비운 그만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금식한 것이지, 하나님께 대해 금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며 "어거스틴도 금식을 구제와 연결시켜 가르쳤는데, 자기가 먹을 것을 줄여서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행위를,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요, 굶주린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신원하 교수는 "식탁은 먹거리를 나누기에 어떤 면에서 생명을 나누는 자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생명과 사랑을 나누겠다는 표시이고, 실천행위이기 때문이다"며 "'우리의 식탁에 앉은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들의 모습이 익숙해지게 되면,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께서도 손님이 되실 것이다'는 교부 제롬의 가르침은 매우 섬뜩하게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는 성찰하고 연구하는 대화와 토론이 있는 기독교 공동체이다. 그곳에 방문하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손님들에게 라브리에서 사역하는 간사들은 여러 차례 자기 가정에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한다"며 "그곳에서 10년 동안 사역한 한 간사는 '라브리에서 요리를 하면서 내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식탁이 한 사람의 영혼을 바꾸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어요. 육적인 양식이 영적인 양식으로 변하는 과정은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신비한 체험이었어요'라고 말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강연에 앞서 참여자들은 '한국교회를 위해'(배정도 목사, 창송교회 담임), '한국사회를 위해'(김주형 목사, 송파가나교회 담임), '한반도통일을 위해'(임종헌 교수, 한양대)을 위해 합심해 기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