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강정훈 교수] 성서화 수집과 감상을 위해 유대인 박물관이나 유대교 회당인 시너고그(synagogue) 에 가면 어디서나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 있다. "언약궤를 앓어버린 유대인의 슬픔과 기원"이라고나 할까? 비록 여호와의 선택을 받은 선민(選民)이라는 자부심과 노벨상을 휩쓰는 영광을 구가하는 열두 지파라는 환희도 있지만, 그러나 2천년 동안 세계 도처를 유랑하며 천대와 핍박을 받고 살면서도, 그들이 쫓겨난 고향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며 절하며 기원하는 슬픔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그들이 바라보는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다윗과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평화롭게 살던 낙원이었다. 그러나 AD 70년에 로마제국의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무자비하게 함락되고 그 유명한 '통곡의 벽' 만 초라하게 역사에 남긴 채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그 때에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나 디아스포라(diaspora)로 살았다.
유대민족의 슬픔의 근원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빼앗김으로부터 출발한다. 예루살렘성전이 그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성전 내 깊숙한 위치에 있는 지성소에 언약궤(the Ark of Covenant)가 있으며, 언약궤 위의 두 그룹(cherubim) 천사 사이의 시은좌(mercy seat)에서 일 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이 그들이 섬기는 유일신 여호와를 만나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과 만나 대화할 수 있는 민족이 유대인 말고 세상에서는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다.
여호와는 왜 언약궤 위에서 나타나실까? 그것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민족 약 200만 명이 모세의 지휘아래 가나안을 향해 출애굽 하여 시나이광야에서 40년을 보낼 때에 여호와의 명령으로 성막을 만들고, 신이 지정한 언약궤 위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나타나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언약궤 안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로부터 직접 받은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과 제사장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와 광야에서 허기진 이스라엘민족을 먹여 살린 만나가 든 금항아리가 들어 있었다.
이 소중한 언약궤는 가나안땅 실로에까지 모셔왔으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언약궤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자 실로의 제사장인 엘리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해산의 고통으로 죽어가면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고 두 번 외쳤다. 언약궤가 빼앗기고, 이스라엘의 희망이요 자랑인 남편 비느하스가 전사하고, 제사장인 시아버지가 급사하였기 때문이다.
유대민족이 가장 자랑하는 왕은 다윗이다. 그 이유는 다윗이 왕이 된 후 첫 사업이 여부스 족이 살던 예루살렘을 빼앗아 시온산에 다윗성을 쌓고 3만 명의 군대를 보내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온 것이다.
13세기에 제작된 모건바이블의 아름다운 삽화를 보면 이스라엘 족속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며 언약궤를 메고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는 앞에서 다윗왕이 베 에봇을 입고 힘을 다하여 춤을 추고 있다. 2층 창문에서 다윗왕비인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업신여겨 비웃고 있다.
그때부터 법궤(언약궤)는 예루살렘 장막에 있다가 솔로몬이 완성한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안치되었다. 이후 BC605년 경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과 앗수르에게 승리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과 솔로몬 성전을 파괴 약탈하고 유다의 여호야김왕과 다니엘을 포함한 귀족들은 바벨론에 제1차 포로로 잡혀갔다. 이때에 솔로몬성전의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자기 산당에 두었더라"는 성경 기록을 보면 십계명 돌비가 들어있던 법궤도 전리품으로 옮겨가 영원히 이스라엘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스룹바벨성전과 신약시대의 헤롯성전의 지성소에서도 언약궤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않을 것이요 기억하지 않을 것이요 찾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도 않을 것"(렘 3:16-17)이라고 예언한 그대로였다.
예루살렘성소의 언약궤가 사라지자 바벨론에서 귀환한자들을 비롯한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그들의 회당인 시나고그(synagogue)에 언약궤의 그림자 같은 토라성궤(Torah Ark)를 마련하였다.
시너고그에서는 안식일이나 의식 때에 히브리성서의 첫 5권인 율법서(Torah)를 낭독한다. 양가죽에 필사한 두루마리 형태의 귀중한 토라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비닛 형태의 보관함을 토라성궤(聖櫃)라 한다.
이 토라성궤를 두는 장소는 전통적으로 시너고그 내부의 벽면 중 예루살렘을 향해서 부착되어 있다. 그들의 정신적 고향인 예루살렘성소와 잃어버린 법궤를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비느하스의 아내의 외침대로 언약궤를 빼앗긴 이스라엘은 선민으로서의 영광이 떠나버린 것이다. 따라서 언약궤 대신에 토라성궤를 만드는 일은 은혜시대에는 다 무의미한 일이다.
언약궤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육신의 제사장들은 땅의 제물로 땅의 제사를 드리나, 그리스도께서는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기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연 대제사장 중의 대제사장'이라고 증거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성소의 휘장은 찢어져 버렸다. 새 언약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약궤는 말할 것도 없고 지상 성막 전체가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음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지난 2011년에는 35년여간 모은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을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는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