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볕 좋은 가을 오후, 학생들의 성경 해석 페이퍼(KoBS)들을 읽고 있습니다. 한 사람씩 만나기 어려운 수업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페이퍼를 읽는 것은, 그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글은 사람입니다. 글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해석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분의 뜻, 마음, 의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놓고 "내가 이렇게 해야 겠다"고 반성하고 결심하는 내용으로 가득한 페이퍼도 많습니다. 성경을 읽고, 먼저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그분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그 때문에 감격하고 놀라고 경탄하며, 하나님 때문에 내 틀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쁨, 그것을 먼저 추구하기를 기대합니다.
읽는 것은 만나 사귀는 것이고, 사귐의 목적은 우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문맥을 떠나 단편적으로 읽고 오해하여 헛된 확신에 사로잡히는 비극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장로님이,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믿는 대로 행동했더니, 성공했다는 강연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문맥을 떠나 성경을 읽은 비극적인 예입니다.
야고보서에서 믿음과 행함에 대한 문맥은, '긍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실제로 행하라는 문맥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기 긍정, 성공에 대한 맹목적 '자기 확신'을 그냥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그것을 무모하게 행해서, 결국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빚더미를 안기고, 고통을 주며 불행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문맥을 떠나 읽는 비극의 전형적인 예는, 요한삼서의 말씀을 잘못 사용한 경우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기를 원하노라"를 세속적 축복을 기원하는 말씀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 본문이 놓인 요한 삼서의 문맥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가이오를 칭찬하고 그가 더욱 더 진리 안에 거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입니다. 진리를 떠나, 불의와 부패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며, 잘 되라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집중하고, 문맥 전체가 어떤 뜻을 드러내는지를 생각한다면, 말씀을 통해 대면하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본적인 예의는 갖춘 만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 앞에서, 무례해지지 않기를 연습합시다. 어떤 사람을 앞에 놓고, 내 말만 하거나, 한 두 마디 듣고 내 생각대로 판단하고, 내가 그 말을 이용하여 내 욕심을 이루는데 쓰면, 그에게 나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말씀을 겸손히 듣고, 그리고 전체적으로 듣고, 내 생각 아닌, 하나님 마음과 생각을 듣겠다는 열망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해서, 점점 더 풍성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을볕이 따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