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아침에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동료 병사들에게 지속적으로 고문당하다가 죽은 윤 일병 어머니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어머니는 이 일을 '신앙'으로 극복하겠다 하셨다. 하나님께 그렇게 응답 받았다고도 하셨다. 난 하나님께서 어머니께 어떤 방식으로 응답하셨는지 알 수 없다. 또한 어머니는 아들을 죽인 살인 병사들 부모를 생각해서 신앙으로 극복하시겠다 하셨다. 하나님의 응답과 살인 병사들 부모들에 대한 배려, 이 두 가지는 필연코 무관하지 않으리라. 다만 어머니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군 당국과 정부가 조치를 취해줘야 아들도 하늘에서 편히 지낼 거 아니냐 하셨다.
이 어머니 심경이 어떨지는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나는 꿈에서라도 자식을 잃어본 적이 없다. 내게는 두 아들이 있다. 둘 다 내가 사는 나라 민이다. 이들이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서 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물론 이곳 미국군대에서도 사고가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걸로 알고 있다. 군대와 관련된 영화로 언듯 떠오르는 건 <사관과 신사>와 <어 퓨 굿맨>이다. 둘 다 종류는 다르지만 병영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잘 보여준다.
주위에선 내 아이들이 한국이든 미국이든 군대 가지 않아도 되는 걸 다행으로 알라고 말들 한다. 나는 '신의 아들' 6개월 방위 출신이지만 군대 가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해왔다. 남들 다 가는 군대인데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말이다. 하기야 방위랍시고 예비군 훈련 통지서나 돌리다 나온 주제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일이 생기고 나서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사정이 이래서야 어디 자식 군대에 보내겠나 싶다. 군대 안가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윤일병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분이 '(자식을 보냈으니) 나도 하나님에게로 가고 싶다'고 말하셨을 때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앵커가 '그러시면 안 된다'고 적극 만류하는 걸 듣고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구나 했다. 그런 생각이 왜 안 들겠나. 그렇게 비참하고 잔인한 모양으로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에게 왜 그런 맘이 왜 없겠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겐 아들을 살인한 자들을, 그들 부모들을 생각해서 '용서'까진 아니라도 미워하진 않으려고 애쓰시는 마음이 느껴져서 가슴이 찡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어머니가 3백 명이나 생겼다. 세월호 참변이 이런 어머니들을 만들어낸 거다. 이분들 생각만 하면 그냥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그 맘이 어떨까 싶어서 말이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을 테고 잠도 잘 못 잘 것이며 그저 멍하니 아무 생각도 안 들 거 같다. 그리고 그게 정상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저 무작정 울음이 터질 것이고 다짜고짜 분노가 치밀어오를 것이며 아무나 붙잡고 싸우자고 덤빌 거 같다. 나 같으면 그럴 거다.
그런데 이런 부모님들이 참변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안 되게 해 달라고 거리에 나가서 노숙을 하고 단식을 하고 있다.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더욱이 이분들 중에는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을 때 거기까지 배 타고 가서 해경이든 누구든 구조를 위해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걸 두 눈으로 본 분들이 많다. 솔직히 말하자. 내가 그분들 중 하나였다면 난 벌써 정신줄 놨을 거다. 이분들처럼 선하게 행동하지 못했을 거다. 난 단식 같은 수준높은 방식으로 저항하지 않았을 거다. 입에는 욕을 달고 살 거이고 미친놈처럼 악을 썼을 거다. 그래서 난 세월호 부모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 기독교인의 저항방법은 비폭력 저항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온 사람이다.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을 돌려대라고 배웠고 가르쳐왔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를 뿐이라고 믿어왔고 그렇게 외쳐왔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그걸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 뜻에서 이분들은 '하늘의 투쟁'을 하고 계신 거다.
그래서 난 이분들에게 머리 숙여 절 올린다. 부디 저 멀리 태평양 너머에 당신들의 깊은 영성을 존경해서 머리숙여 절하는 소자 하나가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