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 참 신앙을 찾아”
종교지가 아닌 일반 언론사가 위와 같은 주제로 기획연재를 시작했다. 착잡함을 금할 길이 없다. 만가지 생각이 오간다. “이 언론은 종교로 인한 걱정에 개신교가 차지하는 부분을 얼마나 된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되는가? 세상 언론에서 직접 발벗고 찾아야 할 정도로 이 시대 참 신앙인을 찾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었는가? 등..”
실제로 얼마나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종교 중에서도 개신교의 신뢰도는 바닥을 쳤다. 성직자들의 신뢰도도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되었나 반문해 보면 수 많은 이유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많은 이유도 ‘핑계 없는 무덤 없다’라는 속담 앞에 꼬리를 내린다. 회 칠한 무덤과 같다라는 예수님의 질책까지 연상되며 나의 가슴을 후벼판다.
높고 멋있게 세워진 교회건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지만 어느새 ‘기득권’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최근 미국 대형교회 건물이 매각된 사실은 국내 언론들에서도 풍자적으로 재생산되며 안타까움이 아닌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빽빽하게 세워진 십자가를 보며 영혼의 치유와 안식을 얻어야 하지만 일부는 숨이 막힌다고 표현한다.
수 많은 교회의 봉사와 선행은 묻혀 버린 채 일부 치부만을 가지고 교회가 공격받는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이야기다. 참 신앙인들을 찾는 것은 내 주변을 둘러봐도 그리 어려운 일 만은 아니다. 이번 일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더 드러내야겠다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해도 뉴스라는 것은 부정적인 내용이 더 드러나기 마련이다. 답답함이 밀려온다. 여전히 죄 된 모습을 가지고 성화의 과정을 걷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의 치부라는 것은 아직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발전된 미디어 환경은 선행보다는 치부를 더욱 빨리 넓게 실어나를 것이다.
내 머리 속에서는 방법이 없다. 다만 할 수 있다면, 조롱과 공격을 받으면서도 더 큰 사랑을 한국교회가 드러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죄 없으신 분이 비난을 받으면서도 원망이 없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라고 더 큰 사랑으로 끝까지 품으셨다. 죽음까지도 넘어선 그 사랑은 승리로 남아져 하늘과 땅을 잇는 구원의 통로가 됐다. 다른 방법은 없다. 사랑만이 모든 미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