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린 엄마를 존경합니다. 저도 이다음에 커서 꼭 엄마처럼 살 거예요."
18년 전, 자신의 신장 하나를 선뜻 떼어주며 생면부지의 만성신부전 환우를 살린 어머니 장점예 씨에게 딸 오성혜 씨가 쓴 편지 내용 중의 일부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오 씨는 장기기증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살린 어머니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큰 감격을 받은 오 씨는 그때부터 생명나눔에 대한 소원을 키워왔다.
그리고 18년 전 자신의 어머니와 같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어머니 장점예 씨에 이어 생면부지 타인의 생명을 살린 오성혜 씨는 "나눔이 대물림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하 장기본부)는 최근 생명나눔으로 생면부지 타인의 생명을 살린 모녀기증인이 국내 최초로 탄생했다고 밝혔다. 엄마는 신장기증으로 딸은 골수기증으로 촌각을 다투는 환우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신장기증인 장점예 씨(57세, 인천)와 골수기증인 오성혜 씨(31세, 인천)이다.
인천 가천의대 길병원에서 골수이식 수술을 마친 오성혜 씨(31세, 인천)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아들 성민(6세)군과 어머니 장점예 씨가 있는 병실로 돌아왔다.
"제 골수를 이식받은 분이 50대 남성분이신데, 급성 골수 백혈병으로 당장 이식을 받지 않으면 위험하신 상태인가봐요. 급히 골수 기증을 하게 되었어요."
평소 꾸준히 헌혈을 해왔고, 이미 오래전 사후 장기기증 서약에도 참여한 오 씨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자 골수기증에도 서약을 하고, 자신과 맞는 이식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오 씨가 생명을 나누는 일에 앞장서게 된 데에는 어머니인 장점예 씨(57세, 인천)의 영향이 컸다.
"장기기증 캠페인에 참여하다 신장기증으로 생명을 살리게 되었어요."
1996년 자신의 신장 하나를 생면부지 타인에게 기증하며 한 생명을 살린 장점예 씨는 생명나눔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우연히 교회에 붙여진 '사랑의 장기기증' 홍보 포스터를 본 후, 생명나눔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아, 이 일이구나! 포스터를 본 후, 장기기증이야말로 내가 참여하고 홍보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마음을 먹은 후에는 만나는 사람들이 무섭다고 손사래를 칠 정도로 장기기증 홍보를 열심히 하게 되었죠."
당시 직장생활을 했던 장 씨는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장기본부에서 이뤄지는 장기기증 캠페인 현장을 찾아 직접 시민들에게 장기기증 서약서를 배포하는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또한 장기부전 환우들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이 있을 때면, 지인 60명에게 후원을 권유하며 환우들을 살리는 일에 함께하자고 독려하기도 했다. 그렇게 3여년이라는 시간을 장기기증 홍보활동에 매진해 온 장 씨에게 '신장기증'이라는 특별한 목표가 생겼다.
"장기기증을 홍보하면서 장기부전 환우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죠. 그리고 같이 홍보활동을 펼치던 분 중 한 분이 신장기증을 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가까이서 함께 활동하던 사람이 타인을 위해 신장을 기증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장 씨는 신장기증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무렵, 장 씨의 남동생이 갑작스럽게 췌장암을 진단받아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남동생이 낫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는데, 기적처럼 남동생이 회복하게 되었어요. 그 때 결심했습니다. 저도 누군가의 생명을 살려야 하겠다고요."
그리고 1996년, 1월 본부를 통해 생존시 신장기증을 실천하며 만성신부전 환우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그리고 18년이 흐른 지난 5월 29일 장 씨의 딸 오성혜 씨가 조혈모세포 기증을 실천하며 사경을 헤매는 백혈병 환우 한명의 생명을 살렸다.
"엄마처럼 저도 누군가의 삶에 희망을 선물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기쁘고 행복해요. 나중에 아들 성민이가 생명을 살리겠노라고 하면 저는 흔쾌히 동의해줄 거예요. 제 골수를 이식받은 분이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응원할게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측은 "지난 29일 신장기증과 골수기증으로 두 사람의 생명을 살린 국내 최초 모녀 기증인 장씨와 오씨 모녀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랑이 더 많은 이들에게 퍼져나가 2만 명에 육박하는 우리나라 장기부전 환우들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