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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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에스겔 34:1~4절에서 악한 목자의 특성과 그 악한 목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에스겔 34:1~4절을 킹제임스 성경으로 읽어보자.
1.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2. 인자야,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대적하여 예언하라. 그들에게 예언하여 말하라. 주 하나님이 목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자신들만 먹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도다! 목자들이 양무리들을 먹여야 하지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들을 잡아 기름을 먹고 양털로 옷을 입어도 양무리를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환자에게 힘을 돋우어 주지 아니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고 쫒겨난 자를 다시 데려오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였도다. 그 대신 너희가 폭력과 잔인함으로 그들을 다스렸도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목자의 ‘우선적인’ 임무가 양들에게 ‘식량을 공급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목자들이 양무리들을 먹여야 하지 아니하냐?”(2절). "… 양무리를 먹이지 아니하는도다."(3절). 그 밖에 목자는 4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환자에게는 힘을 돋우어 주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는 일 등의 임무를 잘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이 모든 일은 내팽개친 채, 자신들만 먹이고 폭력과 잔인함으로 백성을 다스렸다고 책망한다: “… 주 하나님이 목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자신들만 먹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도다!…”(겔 34:2) “… 그 대신 너희가 폭력과 잔인함으로 그들을 다스렸도다.”(겔 34:4) 자기는 호의호식하면서 양들은 굶주리게 하고 대신 폭력과 잔인함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 바로 이것이 악한 목자의 현저한 특성이다.
에스겔서 34장에서 거듭 강조하는 바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들을 돌보기는커녕 오히려 수탈하고 짓밟으며 흩어지게 하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떼의 주인 되신 여호와께서 분노하여 목자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그와 같은 악한 목자가 없을까? 있다! 아주 가까운 곳에. 바로 북한을 다스리는 김정일이다. 여기에서 그 증거를 제시해 보겠다.
300만명 아사자(餓死者)보다 귀중한 비자금과 김일성 기념관
김일성 주석이 죽은 해가 1994년이다. 그때로부터 3년간에 걸쳐 그 시신을 보존하는 기념관을 꾸리는 데에 무려 8억 6천만 달러나 되는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였다. 그런데 그 3년 동안에 굶어 죽은 북한주민의 숫자가 최소한 250만으로 추정된다. 북한 국민 전체가 1년 간 먹을 식량을 확보하는 데에 대략 3억 달러면 가능하다.
그렇다면 3년간 9억 달러면 온 국민의 식량이 해결 될 수 있음에도 그에 거의 가까운 예산을 김일성의 시신을 꾸리는 기념관 건설에 투입한 것이다(이런 정권을 상대로 남한에서 계속 수십억 달러에 해당하는 지원을 해오고 있다). 그렇게 수백만명을 굶겨 죽인 김정일, 이 얼마나 악한 목자인가!
게다가 김정일은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약 50억 달러의 비자금을 맡겨두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기근이 들어 수백만명이 아사할 때, 김정일은 단 한 푼도 식량을 구입하는 데 쓰지 않았다.
김정일이 해외에 빼돌려놓은 약 50억 달러로 추정되는 비자금은 북한주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만들어낸 돈이다. 소위 외화벌이사업을 한다면서 주민들이 山野를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해서 수집한 금, 송이버섯 등을 해외에 팔아 번 돈이 북한으로 돌아오지 않고 스위스 은행으로 들어가 잠잔다. 아편, 필로폰, 가짜 달러 등을 만들어 번 돈도 마카오나 싱가포르, 또는 스위스行이다.
김정일은 國庫로 들어가서 경제부문에 쓰여야 할 돈을 개인적으로 횡령한 것이다. 오늘날 북한경제가 저렇게 처참하게 망가진 결정적 원인이 이런 해외유출이다. 김정일이 살찌는 만큼 북한주민들은 야위어간 것이다. 그는 마르코스의 몇 십 배나 되는 도둑인 것이다.
지금도 김정일은 개성 노동자가 받는 월급 57.5달러 중 50달러 이상을 중간에서 직접, 또는 환치기로 가로채고 있다(이것은 전근대사에 등장했던 극악한 지주-소작 관계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고 갑오농민들이 삼정의 문란시기에 들고일어났던 세금 착취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유일하게 고대 노예제 시대 때 노예들을 착취하던 노예주(主)에나 견주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실로 고대 노예제 사회보다 더한 착취와 폭력, 억압이 존재하는 전근대적 수령 제일의 전체주의 국가가 북한이다.
1990년대에 북한의 기술자들이 비료공장을 현대화시키는 데 2억 달러가 든다고 계산하고 이 돈을 마련해달라고 김정일에게 호소했으나 한 푼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약 300만 명을 굶겨 죽인 북한의 대기근은 비료 부족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하지만 김정일은 수십억 달러를 숨겨놓고서도 주민들 구제에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전 노동당 비서 黃長燁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군량미라도 우선 방출하여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자는 건의도 묵살하면서 그런 발상을 한 부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김정일의 화려한 식탁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코냑, 프랑스산 와인, 샥스핀(상어 지느러미) 스프, 바닷가재, 캐비아(철갑상어 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소 즐겨먹는다는 음식들이다. 김 위원장은 미식가로 유명하다. 전용 기차로 살아있는 바닷가재를 북한으로 실어나르는 것은 물론 피자를 먹기 위해 이탈리아 요리사를 북한으로 데려왔을 정도다.
김정일의 까다로운 입맛은 2001년 7월 그의 러시아 방문 당시 김정일을 수행한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표의 저서 동방 특급열차(The Orient Express)에서 엿볼 수 있다. 풀리코프스키는 김 위원장의 전용 열차에 프랑스산 와인이 가득 차 있었으며 열차가 시베리아 도시 옴스크에 도착했을 때에는 피클이 불가리아산 오이로 조잡하게 만들어졌다며 돌려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까다로운 식습관은 브래들리 마틴의 책 아버지 지도자의 애정 어린 보살핌 아래서(Under the Loving Care of the Fatherly Leader)에서도 생생히 묘사된 바 있다. 마틴은 김정일의 생선회 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김 위원장의 와인 저장고에는 포도주가 1만병이나 비축돼 있고 김정일이 매주 상어 지느러미 수프를 먹었다고 소개했다. 후지모토는 김 위원장의 연회는 종종 한밤중에 시작해 아침까지 계속됐으며 연회가 4일간 계속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정일 전속 요리사로 13년간 일했다는 후지모토 겐지가 2001년 쓴 '김정일의 요리사'란 책에 보면 그는 김정일이 먹을 체코 맥주, 태국 파파야, 이란 캐비아, 중국 멜론, 일본 생선, 덴마크 돼지고기 등을 사기 위해 출장을 가야 했다고 기록했다. 겐지는 최고급의 희귀한 요리재료를 구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다녔고, 심지어 해구신을 구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해구신은 물개 수컷의 생식기로 강정제로 쓴다. 호색한(好色漢)이나 먹는 것이다.
실로 에스겔 34장에 등장하는 악한 목자들을 몽땅 합쳐 놓아도 평양의 독재자 김정일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통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성도들은 기도할 때마다 북한을 폭력과 잔인함으로 다스리고 있는 악한 목자 김정일을 관직에서 속히 내쫒으시고 대신 선한 목자를 세워달라고(사 22:17~21) 눈물로 간구해야 할 것이다.
수년 전 일이다. 두만강을 건너와 한동안 중국에서 지내던 한 탈북 청년이 고향에 남아있던 어머니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북한으로 들어갔다. 평생을 북한 공산집단의 세뇌교육만을 받아온 어머니는 굶어 죽어도 조국 고향에 남아있을 것을 고집하다가 아들의 설득에 끝내 아들을 따라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게 되었다. 아들의 등에 업힌 어머니가 계속 ‘우리가 이러면 공화국을 배반하는 것인데 이래서는 안된다’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다가 그 아들이 강을 다 건넌 후 ‘어머니 이제 중국 땅에 왔수다’라며 등에서 내려놓자, 그 어머니가 느닷없이 북한땅을 바라보며 “야 이 더러운 놈들아, 다시는 네 놈들 꼴 보고싶지 않다”며 고함을 치면서 목놓아 울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현재 북한 주민들의 김정일집단에 대한 감정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억압받고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은 김정일 독재정권이 어서 망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국가적 화를 부르는 악한 정권과의 민족공조
북한을 돕는 일에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 한 가지 있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들을 분리하여 도와야 한다는 원칙이다. 지금 우리 정부가 북한을 돕는 일에 과오를 범하고 있는 점이 바로 이 점에서다. 북한 정권이 어떤 정권인가? 주민들의 굶주림이나 고통은 전연 도외시한 채 그릇된 가치관과 통치관으로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굳히는 데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정권이다.
더욱이 평양의 김정일 독재정권은 오늘날 전 세계 모든 나라들 가운데 기독교를 가장 극심히 박해하는 정권이다.오픈도어선교회의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인들이 수용소에 갇혀 있는 나라가 북한이며(5만~7만명), 지난 한 해에만 북한에서는 수백명의 기독교인들이 처형을 당했다.
이렇게 악한 정권을 ‘민족공조’(북한식 표현으로는 ‘우리민족끼리’)라는 명분으로 지원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실까? 정답은 ‘아니다’ 이다. 성경은 악한 자를 도와주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통치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진노를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한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 19:2)
이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자.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악한 왕이 북 왕국 이스라엘 왕 아합이다. 그의 아내인 이세벨 또한 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 악녀다. 또 대표적인 선한 왕은 남 왕국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다. 그런데 선한 왕 여호사밧이 악한 왕 아합의 요청을 듣고 기도해보지도 않고 아합 왕의 북 왕국을 돕기 위해(민족공조를 명분으로) 북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아람 군대와 싸우러 길르앗 라못으로 나아갔다. 이 때 여호사밧은 전장에서 죽을 뻔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선견자 예후가 나와 맞이하면서 말하기를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 19:2)라고 책망했다.
역대하 18장 1절은 여호사밧 왕의 행적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관계를 맺었더라.”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이 제일 가증이 여기는 우상을 타파하고 정직히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이라,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고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즉위 초기에 선정으로 일관하던 여호사밧은 그의 통치 행적 중에서 일대 오점으로 남을만한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것은 북 왕국과의 동맹이었다. 여호사밧이 악한 왕 아합의 딸이며 악한 여자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를 자기의 아들 여호람과 혼인을 시켜 인척관계를 맺은 것이다. 아마도 왕건이 책략적으로 많은 호족의 딸을 아내로 맞은 것처럼 여호사밧도 장차 그의 아들 여호람 때에 통일왕국을 이루어 볼까 하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남유다 왕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인척관계를 맺은 것은 불행하게도 악한 자와 멍에를 같이 메겠다고 결정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행위를 허락하시지 않는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 그렇지만 여호사밧은 정치, 외교적 목적을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일보다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리하여 아합의 가문과 야합하고 말았다.
그 결혼 후 2년 후에 여호사밧이 북 왕국의 수도 사마리아로 가서 아합을 방문하였더니 아합이 우양을 많이 잡고 후한 잔치를 배설하고 여호사밧과 그 수행원들을 잘 대접했다. 그리고 나서 아합왕이 제안하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군대와 싸우지 않겠습니까? 저를 좀 도와주십시요”하니까 마음이 착한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지도 않고 선뜻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대하 18:3)
이 말은 동족이니까 전장에 나아가 함께 싸우겠다는 것으로서, 소위 ‘민족공조’에 목숨 걸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북 왕국 이스라엘은 분열 이래로 지속적인 우상숭배를 자행하여 남유다 왕국의 참 여호와 신앙에 위협을 주는 나라였다. 따라서 북왕국은 혈연적으로는 남유다의 동족이었으나 종교적으로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민족과 다름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은 동족애의 차원을 넘어 북 왕국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타락한 세력’으로 보는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전쟁에서만은 동맹군이 되는 것을 거절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아합과 인척관계를 맺은 여호사밧은 ‘민족공조’를 더 우선시 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했던 말처럼 “남북 관계 하나만 잘 되면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괜찮다”는 그런 생각이 여호사밧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북 왕국 아합왕을 지원하려고 함께 나가서 아람 나라와 싸우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마음이 불안했던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선지자 400인을 불러다 물어봤다. 그랬더니 여출일구 “나가 싸우면 승리한다”고 예언했다. 모두 미혹케 하는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지자가 없느냐고 하니까 아합이 말하기를 미가야라는 자가 있는데 그는 내게 불길한 것만 예언하는 자라고 했다. 여호사밧이 그에게 물어봤더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지겠고… 아합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미가야의 예언을 청종하지 않고 아합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 아람 군대와 싸우게 되었다. 그런데 아합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갈테니 당신은 왕복을 입고 나가십시오”(대하 18:29)라고 얌체 같은 말을 했다. 그렇게 홀로 왕복을 입고 전장에 나가면 적군은 여호사밧을 이스라엘 왕 아합으로 오인하고 집중 공격을 하여 여호사밧은 전사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는 것이다. 아마도 아합의 마음에는 여호사밧 왕을 죽게 하고 대신 그의 아들이며 아합의 사위가 되는 여호람이 왕이 되게 하여 통일왕국을 이루려는 야심이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아합은 약삭빠른 꾀로 여호사밧을 배신했던 것이다.
아람 왕 벤하닷은 그의 병거 장관들에게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고 명령을 내렸다. 마침내 병거 장관들이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을 보고 이스라엘 왕 인줄 알고 싸우려고 달려왔다. 이 때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니까 여호와께서 도우시사 적군을 감동시키어 물러가게 하셨다(대하 18:30,31). 그리하여 남유다 왕 여호사밧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 때에 선견자 예후가 책망한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 19:2)
남을 도와주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아합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악한 자를 도와주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공조’ 한다면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며 인권을 탄압하는 최악의 수구보수냉전세력인 평양의 김정일 독재정권을 퍼주기 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는 악한 행위라는 사실을 성도들은 깨달아야 한다.
한국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민족주의와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따라서 북한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을 인도주의적인 좋은 정책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들은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를 이유 불문하고 한민족 제재로 간주해 이를 주도하는 미국에 대해 불쾌감을 숨기지 않는다. 민족주의와 통일에 대한 열망, 그리고 북한 정권의 '우리민족끼리'라는 상투적인 구호가 위력을 발휘하여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을 전혀 구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 국가라고 규정한 것에 관해 대개 이렇게 반응한다: "뭐라구? 우리의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조지 부시 대통령! 네 이름부터 기분 나뻤어. 조지고 부시는 게 네가 하는 일이지. 아프간, 이라크를 부시더니, 이제는 북한을 부시겠다 이거지... "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자면 조지 부시는 결코 북한을 부시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북한 동포를 압제하는 현존하는 최후, 최악의 공산주의 수구보수냉전세력인 북한의 김정일 독재정권을 부셔버리고 싶는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우리가 나서서 해야할 일 아닌가. 북한 주민과 김정일 독재정권은 구분해야 한다.
민족공조라는 명분으로 폭정의 전초기지인 악랄한 북한 정권(악의 축)을 감싸고 지원하는 것은 '인도주의'도 '포용'도 아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자초하는 죄악이다. 따라서 이 땅에 국가적 재난이 임한다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악의 밭을 갈고 죄의 씨를 뿌린 결과다.
두고보라. 아합이 여호사밧을 배신하고 죽음의 자리로 몰아 넣었듯이 김정일 또한 남한 정부의 햇볕정책을 배신할 것이다. 이미 북한은 남한의 대북지원을 핵개발과 미사일로 응답했다. 사실상 우리는 벌써 배신을 당한 것이다.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원래 공산주의자들의 장기와 속성이 '거짓'(선전선동)과 '폭력'(대량학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20세기의 인류가 체험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솝우화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겠다.
마음 착한 농부가 얼어 죽게 된 한 마리의 뱀을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그것을 가슴 속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뱀은 마침내 언 몸이 녹아서 죽기 직전에 회생했다. 그런데 독사는 본성을 나타내어 그 은인을 물어버렸다. 뱀에 물린 착한 사람은 독이 온 몸에 퍼져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독사에게 동정을 베풀다니, 나는 죽어 마땅해!"
유석근 목사(알이랑교회)
* 경기도 부천에 있는 알이랑교회의 담임목사로 성경에 계시된 한민족의 정체성과 구원사적 사명의 선포를 소명으로 삼고 있다.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을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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