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관광객 대상 자살폭탄테러, 경주 리조트 붕괴, 필리핀 한인 유학생 피살, 세월호 침몰,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 고양 종합시외버스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등은 모두 최근 몇 달 사이에 발생한 사건사고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 위기관리 능력과 시스템 부실 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처음부터 위기상황에 대한 이해와 인식 부족으로 발생하는 사건사고뿐 아니라, 위험을 예측하고도 방치하는 경우나 위기관리 메뉴얼과 정책이 있는데도 긴급 상황에서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 피해를 키우는 경우도 많다. 위기관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교육·훈련의 부재 때문이다.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도 언제 어떤 형태로 닥칠지 모르는 위기상황에 대비해 위기관리의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고, 위기관리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한국위기관리재단(KCMS)은 29일부터 30일까지 양일간 사랑의교회 국제회의실에서 지역교회 목회자, 선교 목사, 선교위원장과 선교단체 대표, 총무, 위기관리 책임자 등 50여 명을 대상으로 위기관리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도자 위기관리세미나는 2011년에 이후 3년만이다.
KCMS 대표회장 장기호 전 이라크, 캐나다 대사는 "개인뿐 아니라 교회, 기업, 정부 등 어떤 조직이라도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아시아나 항공 착륙사고처럼 위기상황에 대비해 지속적으로 준비한 개인과 조직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나, 세월호 사고처럼 임기응변 식 대응은 피해를 키울 뿐 아니라 개인과 조직의 생존마저 위협받게 한다"고 말했다. 평소 위기상황에 대한 철저한 사전준비와 정신 무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미나는 위기관리 원리와 구조의 이해, 위기관리시스템의 구축방안, 이집트 성지순례단 자살폭탄테러 사건과 캄보디아 선교사 일가족 교통사고에 대한 사례발표, 위기 디브리핑의 필요성, 위기와 멤버케어, 외교부의 재외국민보호 정책, 지역교회 및 선교단체 위기관리 체제 구축 등의 강의와 워크숍으로 진행됐다.
이날 '위기관리 원리와 구조의 이해'에 대해 강의한 KCMS 부설 위기관리연구소 소장 도문갑 목사(GMP)는 "위기관리 정책, 비상대책, 전문 인력과 장비, 교육·훈련이 미리 준비되지 않으면 위기 발생 후에는 위기관리가 불가능하다"며 위기 발생 이전에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위기상황이 터지면 가장 먼저 위기를 인정하고 어떤 위기인지 확인한 후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기관리팀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하는 단계를 거치는데, 평소에 준비가 없으면 위기를 인정 및 확인하기 어렵고, 허둥지둥 하다 초동 대응에 대부분 실패하기 때문이다.
도문갑 목사는 "위기를 사전에 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위기 예방 때문에 선교지를 떠나거나 단기봉사팀이 선교현장에 가지 않을 수는 없다"며 "사전에 위기를 준비하고, 위기 시스템과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평소 위기관리 조직을 운영하면 위기 발생 시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위기 해결이 가능하고 조직에 미치는 여파를 최소화하며, 조직적 훈련과 규율 마련, 지휘권한과 책임 집중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또 도 목사는 "교회, 선교단체의 위기관리는 성경을 바탕으로 위기신학과 철학, 정책을 세우고, 그 위에 위기관리팀, 위기분석, 비상계획, 교육·훈련의 네 기둥을 세운 뒤 위기해결 절차와 멤버케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관리의 대가 스티븐 핑크는 위기의 발생 가능성과 개연성, 발생된 위기의 여파와 영향력에 따라 위기의 바로미터(barometer)를 구분하고 있다. 도문갑 목사는 "위기 발생 가능성과 위기의 영향력에 대한 지수 기준은 각 단체나 현지팀이 위기 유형에 대해 예측하고 평가한 후 설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현재 위기상황에 처해있지 않다면 대신 위기직전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스티븐 핑크의 말을 인용하며 다시 한번 "한국교회와 선교단체가 위기관리에 대한 경각심과 관심을 가질 것"을 요청했다.
이날 KCMS 사무총장 김진대 목사는 '위기관리시스템의 구축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최근 다양한 사건사고를 통해 위기관리와 멤버케어가 주목 받고, 이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으나 개개인의 의식이 전환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위기대응의 핵심은 시스템이 아닌 시스템을 움직이고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월호 침몰 때 재난관리 매뉴얼과 시스템이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은 사람이 이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사람이 곧 위기관리시스템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기상황을 위한 메뉴얼과 시스템, 정책을 마련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조직이 위기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과 이해를 가지고, 교육·훈련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의식과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시간, 정보, 사람의 공백이 한꺼번에 닥치기 때문에 주기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체득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전체적인 위기 상황을 조망하며 국내외의 이해 관계자들을 조율하고, 한정된 인력과 시간 안에서 입체적으로 위기를 해결해 나갈 위기관리책임자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계 2만6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한국선교계에서도 위기 상황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사역팀 내 갈등이나 가정의 위기 등 점진적인 위기도 있지만, 교통사고, 권총사고, 납치, 강도, 질병, 자연재해 등 외부의 사건사고 때문에 발생하는 급작스런 위기는 그 자체로 선교사와 파송단체, 후원교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김진대 목사는 "특히 선교사들의 추방, 강도 등의 사건사고가 내부자들의 소행이 많아 선교사들이 크게 실망하기도 한다"며 선교사들을 위한 멤버케어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기독교계와 관련해 위기가 발생할 경우 교회나 선교단체의 위기관리팀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주도권 확보에 실패할 경우 대외적으로 신뢰를 잃고 사건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며 "위기상황의 전반을 이해하고, 순발력과 이해심을 갖고 위기를 관리하는 교회와 선교단체의 위기관리팀장과 위기관리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기상황에 대비해 개인 비상금과 위기관리기금을 미리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진대 목사는 "위기가 발생하면 인적, 심리적 손상은 말할 것도 없고 수습, 처리 과정 등에서 엄청난 비용이 든다"며 "개인의 경우 편도 항공료나 단체는 위기관리기금을 사전에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 목사는 "위기관리의 핵심은 사람인데, 교회, 선교단체의 위기관리담당자가 없거나 계속 바뀌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KCMS가 2011년 30개 단체(8개 교단, 22개 선교단체)를 대상으로 위기관리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위기관리담당자는 19개 단체만 있었고, 근무형태는 전임이 2명, 일부 근무가 17명, 근무기간은 1~3년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관리팀이 없는 곳은 18개 단체, 위기정책이 없는 곳 13개 단체나 됐다.
김진대 목사는 "국내외에서 반복되는 사건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인재, 안전 불감증을 외치지만 정작 개선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한국선교계는 2007년 아프간 사건 이후 여러 위기관리기구와 KCMS가 세워져 위기관리 지침서를 개발하고, 모니터링을 하면서 교회와 선교단체의 위기관리 능력과 정책 업그레이드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관리 자기진단 체크리스트 (신변 안전편)
1. 일상생활 시
- 주변에 의심스러운 사람이나 물품이 있는지 항상 관심을 가지는가?
- 집 근처의 의심스러운 차량 등에 대한 신고 요령 등은 알고 있는가?
- 비상시를 대비한 가족 간 연락수단을 갖추고 있는가?
- 행동 반경이나 이동 동선, 활동시간 등을 자주 변경하는가?
- 대문이나 창문, 차고문 및 차량문 등은 항상 잠그고 있는가?
- 화려한 복장이나 고급차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 현지인의 시선을 집중시킬 만한 특이한 행동을 하지 않는가?
- 외출 시나 낯선 사람과의 약속 시 가족에게 미리 알리고 있는가?
- 야간 외출을 자제하고, 불가피한 외출 시 2명 이상이 동행하는가?
- 외부인 방문 시 어른들만 문을 열도록 하고 있는가?
- 어른들이 문을 열 경우라도 인터폰 등으로 방문자를 확인하고 있는가?
- 어린 자녀들에게 가족 신상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도록 교육하였는가?
- 비상시 도움을 요청하거나 자발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이웃이 있는가?
- 우리 대사·영사관의 비상연락 전화번호를 숙지하고 있는가?
- 전화기는 침실과 응접실 등 적어도 2곳 이상에 설치되어 있는가?
- 유선전화, 휴대폰, 위성전화 등 복수의 통신 회선이 확보되어 있는가?
- 경찰·소방서·응급병원 전화번호 및 메모지는 비치되어 있는가?
- 비상시 필요한 최소한의 현지어를 구사할 수 있는가?
- 전화임대 시 전화회사에 개인신상 정보 공개를 제한하고 있는가?
- 전화를 받을 때 먼저 이름을 대거나 전화번호 등을 알려주지는 않는가?
- 협박전화를 받으면 이를 접수하는 요령을 숙지하고 있는가?
2. 여행 출장 시
- 목적지에 대한 치안·지리·교통정보 등을 가지고 있는가?
- 방문지역 현지 경찰이나 우리 공관 전화번호는 알고 준비하였는가?
- 비상시 공중전화에 사용할 동전이나 전화카드는 준비하였는가?
- 남과 구별되는 복장이나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지 않는가?
- 비상금을 제외한 과다한 현금을 소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 사전에 가족·친지들에게 행선지 등을 남겨 두었는가?
- 온가족 여행 시 커튼 등으로 외부에서 집의 실내가 보이지 않도록 하였는가?
- 실내등이나 텔레비전·라디오 등이 주기적으로 작동되게 조치했는가?
- 장기간 출타 시 우유나 신문배달 등은 중단시켰는가?
- 출타기간 동안 낯선 사람 방문·침입 등에 관심을 가져줄 이웃은 있는가?
테러로부터 안전한 해외생활(국가정보원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