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염려한다. 외적으로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있으며, 내적으로는 '답답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후 4:7). 다양한 미디어들은 한국교회가 사회적 에토스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거나 지역사회를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사실들에 대하여서는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를 정치경제적 기득권이라는 맥락에서 본다.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압력집단으로 그리기도 하고, 개교회 성장과 이권에 몰두하는 세속적인 집단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특별히 이러한 미디어의 교회관은 젊은이들에게 심각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한국교회 내부를 들여다보아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기관 안에 내홍(內訌)이 끊이지 않고, 개교회들이 당면한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하락과 교세 위축에 대한 걱정과 염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다른 어느 기관이나 종교단체보다 사회적 섬김과 사회변혁에 앞장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태도와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반성을 요구한다. 헌터(Hunter)의 증언에 따르면 "사회변화는 문화를 생산하는 중심부에 위치한 기구들 안에서, 공동의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엘리트들의 초밀한 연결망을 통하여 핵심 심층부로부터의 변혁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주변부에서 시작해 핵심에 이르는 변혁도 필요하지만, 사회와 보다 능동적인 소통을 위해서 교계의 문화 생산을 주도하는 핵심 세력들의 지도력 확보와 의사소통능력 개발이 필요하다.
특별히 인문사회학의 부흥시대를 맞이하여 한국 기독교는 인문교양을 구비하고, 일반은총 영역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또한 권력(power)에 대한 잘못된 사회이론의 무비판적 수용에 대하여 반성하여야 한다. 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정치적인 권력 게임의 틀을 벗어날 수 없던 이유는 예수께서 이방인의 관행이라 지적하셨던, 정복과 지배로 상징되는 콘스탄틴 식의 권력관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신앙적 배경과 동기를 가지고 정치에 참여한 많은 이들과 기관들이 특정한 후보를 당선시키고, 특정한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정책을 입안하면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려고 사회참여를 시도한 신앙인들이 바꾸고자 한 세상을 닮아가고 있다는 모순적 현실을 낳았다.
교회는 마땅히 사회변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일차적 목표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그분께서 맡기신 작은 일들에 겸손한 마음으로 충성하고 이러한 실천을 지속하는 데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것이다. 만약 교회가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것에만 그친다면 자신을 세상의 유혹과 공격 앞에 준비 없이 노출하는 것과 다름없다. "약자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으로 세상을 실제로 바꾸었던 '출애굽'과 '부활' 사건이 좋은 예이다. 한국교회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헤게모니적인 야망보다는 세상을 섬기신 예수님을 닮는 겸손이 필요하다!
이러한 겸손은 신앙공동체 사이의 협력과 연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회발전을 위해 중요한 것은 신앙인들과 교회들 사이의 차이를 수용하는 태도이다. 즉 고착화된 이분법적 관점에 대해 경계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고백하는 신앙인들 사이의 차이를 가능한 사소하게 여겨야 한다. 개교회로서 사역할 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한국교회가 연합활동에서 치명적인 취약점을 보이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여전히 차이점이 의식된다면 그것은 신앙인으로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또한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는 일방적인 긍정이나 부정이 아니라, 긍정/부정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관계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사회에 대하여 일방적인 낙관적 관점으로 인한 '동화적 태도'나, 비관적 관점으로 인한 '이분법적 태도' 모두를 경계하고, 세상의 비판을 통하여 더욱 교회다운 정체성과 역할을 명료하게 세워 나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이 땅의 시민이다. 그리스도인이자 시민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과 사명(벧전 2:9)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내려는 결단이 필요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청지기, 만인제사장 신앙으로써 사회적 공동선(common good)을 제시하고 실천함에 앞서는 기독시민을 양육함이 시대의 과제로 주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독경영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