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학생들과 승객들은 귀가 따갑게 들려오는 안내 방송에 벌떡 일어났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서 무엇이라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려고 할 때 안내방송이 다급하게 큰 소리로 들려왔다.
"승객여러분! 지금 배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 모두는 먼저 구명조끼를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안에 계신 분들은 바깥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학생들과 승객들은 놀란 듯이 서로 소리를 지르며 서둘러 구명조끼를 찾았다. 서로 서로 입혀주고, 또 잠자던 친구들을 깨웠다. 문자를 보냈다. 카톡으로 긴급하게 친구를 찾았다. 방송안내는 다급해졌고, 소리는 윙윙거리며 잘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나가시기 바랍니다. 배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배가 기울고 있습니다. 배가 빠지고 있습니다. 빨리 나가세요, 빨리! 빨리!, ..... 모든 승객들은 ....바깥으로 ..나가시기,,,나가시, 나가.... 나 .... ????"
그러나 이런 방송은 들려지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라고만 하였다. 그것이 더 안전하다고 했다. 다급한 상황만 알았어도 무엇인가 결정을 내렸을 텐데…… 그들은 그냥 어떤 스스로의 결단적인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에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맞이해야 했다. 이것은 비극이다. 이것은 그 어떤 사건보다도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사건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함께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우리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가슴에 울렁거리는 마음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대하기 때문에, 내 것이기 때문에, 내 나라, 내 민족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내가 떠나온 나라, 내가 사랑한 가족,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민족, 내가 기대하는 조국, 내가 소망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과 사랑이 우리를 이렇게 마음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제일 아쉬워하는 것은 사고가 났다는 것이 아니다.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어차피 우리 사람은 연약하기에 문제는 생길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처리하는 기준과 태도가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 우리가 아쉬워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갖고 있는 질문은 "왜 그 아이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아무런 말없이 그들은 구명보트에 먼저 타고 갔느냐?"하는 것이다. 그들이 정말 내 자식이요, 내 식구라고 했다면 그렇게 했을까? 결국 문제는 배가 기울어졌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사랑했다면 그러지 아니했을 것이다. 사랑했다면 그들을 그냥 뒤에 두고 먼저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했다면 최소한 그들과 같이 죽었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복음13:13)
예수님은 자기 한 목숨 버리고 많은 목숨을 살려 내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이리와 늑대와 싸워 양들을 지켰다.
내 한 목숨 힘들고, 내 한 목숨 건지자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뒤에 남기고 어찌 발걸음이 배위에서 떨어졌을까? 그 마음은 무엇을 느끼고 있었고, 그 머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타이타닉 호가 배에 가라앉고 있을 때 마지막까지 연주를 한 두 명의 연주자가 있었다. 밴드의 리더이면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하틀리(Wallace Hartley)와 첼로 연주자인 우드워드(John Wesley Woodward)였다. 이들은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마음을 주기 위해 끝까지 연주하다 죽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그들이 연주한 노래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라고 STEVE TURNER가 "연주를 멈추지 않은 밴드"라는 책에서 말했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실패 앞에서, 희생 앞에서, 손해 앞에서, 부끄러움 앞에서, 고통 앞에서, 고난 앞에서, 두려워하며 등을 돌린다. 그러나 사랑은 그 어떤 것에서도 뒤돌아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 자리에 함께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이다(LOVE IS NOT TO LEAVE BUT TO LEAVE). 떠나는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이 사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요, 이것이 인생이다.
글ㅣ김범수 목사(워싱턴동산교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