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바람의 온도가 다르다. 채찍같이 매섭던 겨울바람이 언제 마음이 녹았는지, 이제는 따뜻하게 얼굴을 핥고 지나간다. 아는 꽃 이름이라야 개나리, 벚꽃 밖에는 없지만, 이름을 몰라줘도 색색의 다양한 꽃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왁자지껄 기지개를 켠다.
이 때, 살랑살랑 날아와 우편함에 살며시 내려 앉는 봄의 불청객이 있다. 나비도 아니고 꽃가루도 아니다. 바로 청첩장이다. 꽃 단장한 청첩장을 받아 들고 벌써 결혼시즌인가 생각하기가 무섭게 무슨 연체 고지서 마냥 줄줄이 날아들 기세다.
왜냐하면 청첩장이 곧 축의금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관계, 사업적 관계 등을 따라 내야 하는 축의금이 만만치 않다. 그냥 체면치레만 한다고 하더라도 한 달에 몇 번씩이나 있는 결혼식을 다 챙기려면 한달 월급이 순식간에 날아갈 지경이다.
왜 아름답고 축하 받아야 할 결혼식에 축의금 문제 같은 그늘이 길게 드리워진걸까? 문화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요즘 결혼을 하려면 돈이 정말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결혼식은 사랑하는 사람의 결합이라는 신성한 의미를 넘어서 자본주의의 쇼 케이스가 되어 버렸다.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보다는 반지가 얼마인지,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는지, 예식장 뷔페 가격은 얼마인지, 신혼 집은 전세로 가는지 대출을 끼고 샀는지, 그리고 그 돈은 양가 어느 쪽에서 댔는지 온통 돈 얘기 뿐이다.
이러다 보니 몇 년을 사귀고 결혼을 진행해도 혼수 문제로 다투는 것은 기본이요, 심지어는 파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결혼 해서도 우리 집, 너네 집 하면서 누가 더 많이 가져 왔는지, 누가 더 손해 봤는지 부부갈등, 고부간의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결혼은 두 사람이 부모를 떠나 서로 한 마음이 되어 독립을 하는 것인데, 독립은커녕 오히려 집이니 예물이니 축의금이니 하는 것들에 시작부터 발목을 잡히게 된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상태로 시작하기를 원하다 보니, 하나하나 노력하여 장만하는 기쁨은 궁상맞게 보이고, 가진 것 보다는 없는 것에 더욱 신경 쓰게 된다. 내 땀이 들어 있지 않으니 분수에 맞지 않는 더 큰 것, 더 좋은 것에 쉽게 마음이 가게 되고, 못 가진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을 불행한 사람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가 아니다. 아이를 낳게 되면 유모차 전쟁이 시작된다. 명품 유모차, 분유, 옷,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등등.
이 모두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생기는 일이다. 돈 잔치로 시작된 결혼식은 계속 하마처럼 돈을 들이킬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마치 그런 것이 당연한 것인 양 이웃과 비교하며 경쟁하며 살아간다. 여유는 없어지고 불평과 한숨만 가득해 진다.
옛날 우리 부모의 세대처럼 숟가락 두 개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 결혼식, 우리 자녀의 결혼식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과시하기 위해서는 하지 말자. 결혼 시점에 은퇴한 노부부처럼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면 그것이 끝이지 시작이겠는가?
채우지 못한 것은 그만큼의 가능성을 선물 받은 것이다. 결혼은 그 가능성의 바람을 타고 인생의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돈은 닻이다. 안전하고 안정되지만, 닻을 걷어 올리지 않고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없다.
가볍게 시작하자. 봄바람이 가볍듯이 결혼은 가볍게 시작하고 무겁게 인생을 마치자. 담은 것이 아니라 담을 것을 기대하며 부모의 항구에서 둘이 함께 떠나라!
글ㅣ애틀랜타성결교회 김종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