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크로스로드 한인교회)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속에서 곤란(困難)이나 환난(患難) 없이 살기를 바라며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유토피아 세계는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지 아니했으며 주님이 재림하시기 이전에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하게 하여 삶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볼 때 인간의 세계는 결코 완전할 수 없으며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에 예가 중국에 위, 촉, 오나라 삼국이 전쟁을 통해 통일을 이루기 위해 40년 동안 백성들이 피를 흘렸다. '삼국지-용의 부활'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러한 정황에 대해 많은 삶을 배울 수 있으며 전쟁을 통한 영원한 승리와 평화는 결코 주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주인공이 조자룡으로 그는 백전불패의 신화를 이루었으며 조연으로 전쟁에서 만난 조자룡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나평안이다. 그들은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촉나라 사람들로 유비, 관우, 장비가 위나라 조조와 싸우기 위해 봉명산으로 집결해 있을 때 그들의 진영에 들어와 군병이 된다.

그때 나평안이 조자룡에게 지도를 보이며 우리가 봉명산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돌게 되면 삼국이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을 한다. 한 바퀴를 돌아 조조의 손녀 조영과 대치하여 봉명산에서 마지막 전투를 할 때 조자룡은 촉나라의 대장군으로 전투에 참여 하게 된다. 최후의 결전에서 조자룡과 나평안이 대화를 나누는 멋진 장면을 보게 된다. "한 세대가 지날 때 까지 전쟁을 한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실패가 없으면 성공은 결코 없다.", "장수는 전투 중에 절대로 전투복을 벗지 않는다."

삼국통일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세월과 백성들을 희생시키며 위, 촉, 오나라가 싸워 왔지만 정작 삼국을 통일한 나라는 진나라이었다. 이것을 볼 때 삼국통일을 이루기 위해 싸운 지휘자들이 모두가 자신을 위해 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들은 평화를 이룬다는 명분하에 전쟁을 일으키지만 그 속에는 항상 갈등과 역경이 반복되며 전쟁에 임하는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받게 된다.

이러한 삶은 수천 년 역사가 지난 오늘에도 계속되며 전쟁과 삶의 역경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주어지는 역경의 힘이 너무나 버겁거나 견딜 수 없을 때에 사람들은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는 질문을 할 것이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고난과 환난을 가만히 두고 보고 계시는 것인가?", "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가?", "나에게 주어지는 환난이 언제 끝이 날 것인가?"이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고난과 환난이 주는 두려움이 너무나 크기에 신앙에 대한 의심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삶 속에서 주어지는 환난은 예고하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아니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되어야 하기에 세상으로 부터 받는 핍박이 더 많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이 주어지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음에 두려움과 근심걱정이 요동친다.

환경으로 인한 두려움을 인간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분노와 감정이 앞서기에 객관적인 판단력이 흐려지고 생각이 폭이 좁아질 뿐 아니라 성급하게 일처리를 하려고 하기에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는 더 복잡하게 되어버린다. 신앙인은 환경과 어려움이 주어질 때 살아계신 주님이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고난과 환난을 피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며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해야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된다.

로빈슨 크루소가 항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되었다. 그는 겨우 목숨을 건져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 상륙하게 되었다. 그는 파손된 배에서 몇 가지 물건을 건졌다. 그중에 약상자가 있었다. 아플 때 필요한 약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그는 몸이 아파 약을 꺼내려고 조심스럽게 약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약이 있었을 뿐 아니라 영혼의 약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것은 성경책이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약을 먹고 나서 성경책을 펴 보았다. 시편 50편 15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 왔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크루소는 잠들기 전에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것은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었다. "성경 말씀에 기도하면 저를 구해 준다고 한대로 하나님, 제가 집으로 속히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를 마친 그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었다. 로빈슨 크루소가 풍랑 속에 죽음의 위기를 경험하고 무인도 섬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그의 생각이 아니라 능력의 말씀이고 그것을 통해 그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고 자유함을 갖게 되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의탁하고 해결을 간구하는 것은 인간의 연약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통해 더 강한 능력을 받은 것이며 이 세상의 어떤 지식보다 강한 지혜의 응답을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은 마음의 평안을 주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그 속에 생명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가르침으로 존재하기에 비록 환난의 역경의 구름이 쉽게 걷히지 아니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심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기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라면 "환난 날에 생명의 씨앗"인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복음의 씨앗은 생명력이 강하기에 어디에서도 자라나게 되어 있다. 특별히 생명을 가진 복음의 씨를 뿌리다 삶의 역경의 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히브리서 11:35-37절을 보면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나니" 이것의 배경은 데살로니가교회에 처한 고난과 환난에 대한 것을 묘사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각지 아니한 고난을 겪는 일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것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주먹은 주먹으로"대처하여 사탄의 노예가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고난을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이라 생각한다면 열심을 다하는 기도의 간구와 진리의 말씀에 가까이 하여 환난을 이겨내는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글ㅣ크로스로드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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