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는 단순히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일반 분야에서도 대가들의 모습에는 이런 '양면성의 통전성'이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지면상, 기독 리더들의 측면을 생각해봅니다.
'이성적 낭만주의자'(Rational Romantist)란 글귀는 존 파이퍼가 전에 C. S. 루이스에 대한 강연에서 표현한 말이지만, 제가 보기엔 루이스만 아니라 다음에 언급될 교회사에서 좋은 리더들의 모습은 분명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는가 생각해봅니다.
1. 이성적 낭만주의자, 에드워즈
먼저 에드워즈입니다. 요즘 연구원에서 에드워즈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에드워즈의 전기와 주요 저작들을 읽어가면서, 생각하는 점은 바로 '이성적 낭만주의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게는 에드워즈에게도 이런 모습이 충만합니다. 이런 점에서 로이드존즈가 에드워즈의 설교론을 이야기 하면서 '불타는 신학'(theology on fire)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에드워즈에겐 정밀한 신학적 치열함과 함께, 거룩한 낭만성이 함께 어울러진 경건을 봅니다. 특히 그가 중생을 체험한 이후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양면성이 잘 드러난 대표작이 바로[ 부흥론], [신앙감정론], [천지창조의 목적], [참된 미덕의 본질] 등에서 잘 드러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이성적 낭만주의자, 로이드 존즈
로이드존즈는 냉혹할 정도로 철저한 강해설교에 생명을 건 분입니다. 왜냐면 설교의 본질은 말씀이 드러나길 원하는 열심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설교에는 철저하게 '성령의 기름부음'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늘 하나님의 서프라이징한 성령의 역사에 늘 열려있는 '거룩한 로만티스트'였습니다. 이런 점은 그의 설교론에서 잘 드러납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신의 평생 멘토인 에드워즈를 사모하고, 그의 설교론을 '붙타는 신학'이라고 좋아했고, 이런 점에도 또 다른 멘토로, 단순한 설교지만 조지 휫필드 설교에서 충만한 성령의 기름부음에 주목했습니다.
3. 이성적 낭만주의자, C. S. 루이스
이 점에 대해선 이미 존 파이퍼나, 최근에 전기를 낸 맥그래스, 이전의 전기작가인 조지 세이어가 잘 보여주었가고 생각합니다. 그의 정밀한 지성이 충만한 글과 함께, 거룩한 낭만성이 잘 드러난 작품들, 이것이 하나로 잘 어울어진 것입니다. 정밀한 지성은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인간폐지] 등에서, 낭만성은 무엇보다도 나니아 씨리즈에서 잘 드러납니다.
4. 이성적 낭만주의자, 존 파이퍼
요즘 한국과 미국에서 선한 영향력을 주는 파이퍼 또한 전형적인 이성적 낭만주의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는 원래 정말 형편없을 정도로 앞에서 말하는 것에 공포감을 가졌던, 그리고 엄청나게 더디 책을 읽었던 (terribly slow reader)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위튼대학과 풀러에서 좋은 교수들을 통해서 학문에 대한 열정을 배우고, 결국은 자신의 한계와 컴플렉스를 극복합니다.
특히 그는 평생의 멘토로 일종의 '좌 씨 에스루이스, 우 조나단 에드워즈'를 평생 씨름하면서 자신의 신학적 지평을 견고히 하면서 넓혀갔습니다. 그래서 철저한 강해설교자이자, 분석적인 신학해설집들을 출간합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론 시인으로 정기적으로 시를 쓰는 낭만주의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에 압도되어, 세상의 비주얼한 것에 대해 일부러 포기한 것입니다.
5. 결론
마무리하면, 서로 어떤 면에서 함께 가지 못할 듯한 '지성과 감성, 지성주의자와 낭만주의자, 성경주의자와 성령주의자'가 하나님의 참된 은혜를 경험하면, 우리 이성을 뛰어넘어서, 이 두 가지가 '통전적(holistic)으로 조화, 어우러지는 경건'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 동역자들 가운데, 이런 철저히 성경에 뿌리박은 이성주의요, 성령에 붙들린 거룩한 낭만주의자들이 많이 나오길 기도합니다.
아울러 이번 학기 저희 연구원에서도, 이런 에드워즈의 아름다운 경건의 모습이 더욱 충만하도록 계속적인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글ㅣ심현찬 목사(워싱턴 트리니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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