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타고 빨리 달리다보면 주변의 것들을 자세히 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한번 말에서 내려 산천초목을 바라보면서 달리는 말의 발굽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아니라 흐르는 시냇물의 소리와 산의 바람소리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말의 움직이는 화(化)보다 그대로 원래부터 있었던 자연의 성(性)을 살펴볼 때 우주의 조화를 더 알게 된다.
교회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부흥'이나 '성장'되기를 원하신다. 교회 부흥에 대한 본은 사도행전 2장에서 예루살렘교회를 통해서 찾을 수 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부흥은 성도들의 영적 성숙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양적증가였다. 성경은 이렇게 그 부흥의 모습을 묘사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2:46-47).
교회는 거룩한 곳이며, 신령한 곳이다. 그것이 교회의 본성이고, 본질이다. 지금까지 교회는 그 거룩성(性)을 지켜오려고 말씀과 기도로 영적전투를 해왔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 때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분과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는 세상으로부터 교회를 향한 비판과 외면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교회가 무장하고 경계해야 할 가장 큰 골리앗은 "종교다원주의"이다. 종교다원주의는 혼합주의이고, 세속주의이다. 쉽게 말하면 꿩 잡는 것이 매라는 것이 다원주의이다. 예수 없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될 수 없다. 교회 안에 세상의 물질가치, 성공신화, 사람중심, 영웅 만들기, 대형화(化)와 거대화(化)가 들어오게 될 때 세상을 향해 항진하는 배는 바다에 침몰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과 말씀이 아니면 교회는 그 존재의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교회는 부흥과 성장이라는 이름하에 세상이 원하는 가치대로 "더 크게, 더 많게, 더 높게"를 외치며 '거대화(化)'의 경기에 참여했다. 그 결과로 많은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 이것에 돌을 던지지 않는다. 박수를 치고 칭찬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것처럼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교회는 세속화로 옷이 젖고 말았다. 물론 세상이 악하니 교회가 온전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가 너무 많이 세속화되어서 과장되게 표현을 하자면 교회의 얼굴에 성형을 많이 해서 교회인지, 학교인지, 단체인지, 종교기관인지, 더 나아가 교역자나 성도들이 소유한 기업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교회가 거대화(化) 엔진을 달고 움직이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거대화와 함께 교회의 본성(性)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교회의 본성은 거룩성이다. 예수님은 거룩하시다. 예수님은 교회의 몸이시고, 머리이시니 당연히 거룩해야 한다. 사춘기 아이가 아무리 키가 커서 어른처럼 보여도 청소년에 불과한 것처럼 교회가 거대화된다 하더라도 교회는 지켜야 할 자기만의 본성이 있다. 그것은 거룩성(性)이다. 교회는 공회이다. 개인이 만든 회사나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회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말씀에 세워진 것이 교회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공회이다. 공회이기에 거룩해야 한다. 이제 거대화(化)의 힘찬 움직임에서 교회의 본질, 곧 공회의 거룩성(性)을 순결하게 지켜야 할 때이다. 말을 타고 달리며 한 쪽 귀는 말의 말굽소리, 한 쪽 귀로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멋있게 달리는 흑기사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더 바란다면 한쪽 눈은 좌우에 펼쳐진 세상의 산들을 둘러보고, 한쪽 눈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진리의 길을 힘차게 달리는 전투사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글ㅣ김범수 목사(워싱턴 동산교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