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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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복하라'는 의미의 독특성
결혼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창 1:28). 그런데 '땅을 정복하라'는 용어는 조금 특이합니다. ‘정복하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카바쉬(kabash)는 군사 용어입니다.
전쟁은 아주 잔인합니다. 그러므로 이 '정복하다'는 의미에는 '짓밟다', '약탈하다', '굴복시키다' 등 아주 강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정복한 나라들에서 노략한 은금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삼하 8:11). 그만큼 창세기 1장에서 사용한 이 땅을 '정복하라'는 말은 강하게 복종 시키는 정복을 말합니다.
2. 하나님은 왜 모세가 이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셨는가
하나님은 왜 모세가 이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셨을까요? 즉 인격적 존재도 아닌 땅을 정복하는 데 왜 이 강한 전쟁 용어를 사용하도록 했는가하는 점입니다. 창세기 1장은 창조 주간에 대한 설명으로 세상과 생물들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으며 아담과 하와는 아직 범죄하지도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아직 땅은 저주 받지도 않았으며 아담과 하와는 땀흘려 땅을 경작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사람은 육식을 하지도 않았으며 아담과 하와는 땅의 짐승들을 잔인하게 해칠 필요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인간들 사이에 아무런 전쟁도 없던 창조 주간에 왜 이런 강하고 잔인한 전쟁 용어를, 그것도 비인격적 땅에다가 적용시켰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결국 '정복하라'는 이 독특하고 강한 단어에는 분명 가벼운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땅을 정복하라'는 용어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땅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 땅과의 전쟁 선포를 말함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전쟁도 없던 창조 주간에 사용된 ‘땅을 정복하라’는 이 용어는 땅과의 전쟁 선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지하고 있는 땅에 인격성을 부여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의지가 반영된 구절로 보입니다.
땅은 단지 인간이 정복할 대상일 뿐입니다. 다만 인격성을 부여할 수 없는 땅을 정복할 때에 우리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무분별하게 파괴할 권한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닙니다.
린 화이트 2세(Lynn White Jr.)는 “우리의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근거”(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라는 작은 논문에서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을 역사적 기독교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는 서구식 기독교야말로 역사상 가장 인간중심적 종교(anthropocentri religion)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담의 후손인 우리 인간은 자연에 대해 하나님의 초월성을 공유했다고 보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존이 아닌 이원론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착취(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초대 교부였던 터툴리안과 이레네우스 때부터 성경을 잘못 해석했다고 린 화이트 2세는 지적합니다. 즉 그의 해석에 따르면 성경 말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장 28절 말씀에 대한 일부 기독교인들의 인간중심적인 그릇된 해석과 오해가 땅에 대한 마구잡이식 지나친 개발과 그에 따른 공해와 생태계 파괴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앗시시의 성 프란시스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 생태중심적(Eco- centric) 자연관이라는 또 다른 기독교적 견해를 제시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중심적 생태관과 달리 인간과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동등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성 프란시스의 입장은 더 진전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고 린 화이트 2세는 말합니다. 역사학 교수요 목사였던 그는 성 프란시스의 입장에 호감을 가지고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였지요. 서구 기독교 사회의 인간중심적 생태관이 비성경적이고 실패하였다면 그와 상반된 견해 가운데 하나인 성 프란시스의 입장이 창세기 1장 28절과 어떻게 조화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좀 더 복음적인 신중심적 생태관이나 삼위일체적 생태관과 같은 제 3의 성경적 견해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가 더욱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4. 나가면서
무생물인 땅에 대해 군사 용어인 ‘정복’하라는 강한 어휘를 사용하여 명령을 내릴 만큼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땅에 대한 많은 권리와 소유권을 주신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땅을 정복하라'는 말은 범신론자들이나 만유내재신론자들처럼 땅에 어떤 영성을 부여하려는 경우에 대해서도 분명 경계합니다. 인간은 분명 땅을 복종시키고 관리할 많은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았습니다. 인간은 땅의 청지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땅에 대한 이 문화 명령을 군인처럼 철저히 수행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면 언제나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롬 14:23). 이것은 땅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당연히 적용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청지기보다도 더한 군사와 같은 무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믿음과 선한 양심과 지혜로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홈페이지(www.kictnet.net)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