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2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13 그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요 그 다음에 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 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15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16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찜이뇨 르우벤 시냇가에서 마음에 크게 살핌이 있도다 17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18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19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20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22 그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소리는 땅을 울리도다 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1. 11절부터 23절까지는 전쟁의 내용을 시(詩)로 표현한 부분이다. 드보라의 마음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싸움은 노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이 일어나는 것이다. 먼저 그녀는 자신의 영이 일어나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그녀는 온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기 위해 자신이 깨어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를 위해 부르짖고 있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이 구절은 전쟁을 위해서는 먼저 인도자들의 영이 깨어나야 함을 일깨워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몇몇 성도들이 깨어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도자들이 먼저 깨어나는 것이다.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에게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가라”고 한 것은 그가 시스라 군을 격파할 때 생포한 포로들을 끌고 이스라엘 진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이는 바락의 승리가 더욱 빛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13절의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다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귀인들이 전투에 참여했음을 가리킨다. 어쩌면 당시 많은 귀인들이 20년간 야빈의 억압을 피해 먼 곳으로 도망하여 살았거나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은 귀인과 굳게 살아남은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다고 말한다. 드보라에게는 그들 모두가 너무 귀하게 보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드보라는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대적의 군대)들을 치시려고 강림하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드보라의 책임정신을 볼 수 있다. 인도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더 이상 다른 누구에게 책임을 떠 넘길 사람이 없는 그가 최고 책임자다. 그녀는 여기서 이 전투를 자신의 전투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녀가 ‘나를 위하여’ 여호와께서 싸우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모든 전투 참여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어떠한 책임 정신인가!

2. 14절부터는 전투에 참여한 지파별 실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에브라임 지파 중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말렉 족속이 거주했던 지역의 사람들이었다(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요). 베냐민 사람들이 너희 백성 중에 섞여 있다는 것은 베냐민 사람들이 단체적으로 참전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백성 가운데 섞여 전쟁에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마길은 므낫세의 독자였고 므낫세 지파는 요단 동편과 서편으로 절반씩 나누어졌는데, 여기서는 요단 서편 곧 가나안에 들어온 므낫세 지파를 가리킨다. 그들은 군 지휘관들이 군을 이끌고 참전했다. 스불론에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장군들이 와서 군대를 모집하고 계수하는 일에 종사했다는 의미다.

대장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소페르’는 문자적으로 계수하는 자다. 흠정역에서는 ‘글 쓰는 자의 펜을 다루는 자(that handle of the pen of the writer)’로 번역했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전쟁 경비를 계산하는 병참 행정을 맡았으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어떻게 해석하더라도(계수하는 자이든 펜을 잡은 자이든) 스불론이 군 행정에 종사한 것은 사실이다. 마길의 지도자들이 용맹한 사람들이라면 스불론의 펜은 지식 있고 행정력이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신약으로 말하면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가 있어야 몸의 봉사가 이루어지고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5절은 잇사갈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했다고 말한다. 잇사갈 지파의 지도자들은 드보라와 완전히 하나되어 싸웠다.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이 가졌다는 것은 바락의 영과 잇사갈 사람들의 영이 하나로 합해졌다는 뜻이다. 개정 표준역 성경에서는 잇사갈이 바락에게 충성하였다고 번역한다. 이렇게 전쟁은 지도자와 완전히 하나된 자들이 있을 때 승리할 수 있다.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내려갔다는 것은 잇사갈이 바락과 함께 시스라 군을 치기 위해 다볼 산에서 기손 강가로 내려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사사 드보라는 그들의 치러 내려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3.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다는 말은 적극적인 표현이 아니다. 큰 결심을 했다는 것이 매우 좋게 들리지만 그들은 결국 참전하지 않았다. 16절에서 드보라는 르우벤 지파가 요단 동편에 거하면서 다른 지파가 전쟁할 때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듣고 있음이 어찜이냐고 했다. 그런 행동이 과연 합당한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드보라는 온 이스라엘이 전쟁 중에 있을 때 르우벤 지파가 평안히 앉아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으며 탁상공론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호크마 주석).

르우벤 지파가 거주했던 요단 동편에는 시내가 많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시냇가에서 큰 결심, 또는 큰 살핌(16절)을 가졌는데, 이는 참전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큰 살핌과 큰 결심은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 ‘great searching of heart’란 르우벤 자손들이 요단 동편 시냇가에 모여 큰 토론을 하면서 주저함이 있었다는 말이고 많은 살핌 끝에 참전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다.

4. 17절은 전투에 전혀 무관심했던 몇몇 지파들을 거론한다. 15절과 16절은 토론하고 관심을 보였지만 주저하다가 결국 참전을 포기한 지파들을 말하는 반면, 17절은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자신들의 생업에만 충실했던 지파들을 서술한다.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이란 요단 동편의 사람들 중 르우벤을 제외한 므낫세 반 지파와 갓 지파를 가리킨다. 그들도 참전하지 않았다. 단은 배에 머물렀고 아셀은 해빈에 머물렀다고 했다. 해빈과 시냇가는 지중해 연안을 가리키며 단과 아셀이 생업에만 몰두했다는 뜻이다.

5. 18절의 스불론과 납달리는 앞의 르우벤, 갓, 므낫세, 단, 아셀 등과는 달리 목숨을 걸고 싸운 지파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바락에게 소집되었고 가장 가나안의 압제를 많이 받은 지파이다. 대적으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은 자들 가운데서 이기는 자들이 나오고 영적 전사들이 나오는 것은 교회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스불론은 생명을 걸고 싸웠고 납달리는 시스라의 철병거를 향하여 돌진하였다.

6. 19-22절까지 내용은 전쟁의 실제 상황을 그린 것이다. 열왕은 가나안 야빈의 동맹군을 말한다. 19절은 그들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전리품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20절은 시스라 군은 결국 하늘의 별들과 싸웠다는 뜻이다. 이는 그들이 하늘을 대항하여 싸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1절에서는 기손 강의 범람을 말하는데, 야빈 군은 기손 강에서 강의 범람으로 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드보라는 그들이 하늘의 별을 맞아 싸웠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라고 한 것은 드보라가 피동적으로 그저 하늘의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의 영혼이 하나님과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또한 이스라엘 군을 지휘하고 통솔함으로(바락을 통해) 하나님의 싸우심과 더불어 역사한 것을 가리킨다.

7. 22절은 적군의 도주하는 광경과 이스라엘 군의 추격하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그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소리는 땅을 울리도다”).

8. 메로스를 저주하라고 한 것은 야엘에 대한 축복과 대조를 이룬다. 그들은 어쩌면 기손 강 부근에 있었을 것이며 응당 이스라엘을 도와야 할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임에도 용사를 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길목에서 야빈 군을 만났는데, 만일 그때 그들이 그 군대를 쳤더라면 이스라엘에게 통쾌한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절호의 기회를 지나치고 무시해버렸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은 힘들게 이기게 됐다. 그러므로 드보라는 메로스를 저주하라고 거듭 외치고 있다.

24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25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주었고 26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장인의 방망이를 들고 그 방망이로 시스라를 쳐서 머리를 뚫되 곧 살쩍을 꿰뚫었도다 27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28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더디 구는고 하매 29 그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30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놓은 채색옷이리로다 곧 양편에 수놓은 채색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31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1. 24절은 메로스의 저주와 완전 대조되는 부분이다. 헤벨의 아내 야엘에 대한 내용이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며 모세의 장인 르우엘의 일족이다. 남편 헤벨은 이스라엘과 야빈 왕의 중간쯤 서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 그의 아내 야엘은 강력하게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 그러한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2. 그녀는 시스라가 물을 구할 때 우유를 주고 안심시킨 후 잠잘 때 그의 머리를 뚫었는데 곧 살쩍, 관자놀이를 꿰뚫었던 것이다. 이는 강한 확신의 표시다. 즉 확실하게 죽인 것이다. 그는 교만한 머리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압제하며 자랑하다가 가장 수치스런 방식으로, 즉 칼이나 무기가 아닌 여인의 장막 말뚝과 방망이로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공의의 하나님의 보수하심이다.

3. 26절부터는 시스라 어머니의 상상적인 기다림을 묘사한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살창 밖으로 바라보며 기다리다 지쳐 있었다. 왜 이렇게 더디 오느냐면서 마음을 졸이는 것이다. 지혜로운 처녀들이 대답했을 것이다. 이는 모두 상상이지만 시(詩)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놓은 채색옷이리로다”. 이 모두가 그들의 헛된 망상을 묘사한 것이다.

31절은 기도로 끝마친다. 주의 대적이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옵소서! 이는 드보라의 마지막 소원으로서 앞으로 있을 모든 대적이 시스라와 같이 망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야엘처럼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땅에 40년의 평화가 있게 되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유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