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합동 제96회 총회가 전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4박5일간 진행됐다.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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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제96회 총회가 전북 전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다. 전국에서 모인 1천3백여 총대들은 새로운 회기를 이끌 임원들을 선출하고 교단 내 선적한 문제들을 심도있게 토의했다.
이번 총회서도 많은 것들이 결정됐다. 임원선거에선 교단 사상 처음으로 50대 목사부총회장(정준모 목사·57)이 탄생했고, 새로 뽑힌 총무(황규철 목사)는 기존 5년의 임기가 아닌 ‘기본 3년 임기에 1회 연임’이라는 새 기준을 적용받게 됐다.
이 밖에도 ▲관상기도·왕의기도 교류금지 ▲여자 목사안수 금지 ▲보수교단 중심의 WCC 반대 연합행사 개최 ▲교단 자체 새 찬송가 발행 ▲임원선거 방식 기존 ‘제비뽑기’ 유지 등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 전체에 영향을 줄 중대한 사안들을 결의했다. 면면을 보면 그야말로 ‘합동’다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여성 안수’ 역대 총회서도 번번히 거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여자 목사안수’에 대한 건이다. 합동은 이번 총회에서 “역대 총회 결의를 검토한 바 (고전 11:3) 중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라는 내용, 그리고 딤전 2:12~14 중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조용할지니라’라는 하나님의 말씀 등에 비추어 여자 목사는 허락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번 총회서만이 아니다. 지난 제22회, 제23회, 제74회, 제83회, 제89회, 제92회, 제95회 총회 등에서도 여자 목사안수를 허용해 달라는 헌의가 있었으나 모두 기각됐다.
합동이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대표적 보수교단임을 감안하면 이런 결과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이번 총회에서 ‘여자 목사안수 금지’ 건을 통과시킨 과정 역시 매우 순탄했다. 일부 총대들이 ‘재고’를 요청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타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것도 백지화하자는 마당에 통할 리 없었다.
이런 합동과 달리 예장 백석은 이번 총회에서 여성의 목사안수를 전격 허용했다. 물론 이를 두고 한때 갈등이 있었으나 ‘여성도 남성에 준한다’는 교단 내 여론과 시대적 흐름에 따른 결과였다. 무엇보다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여성 없이 교단 발전도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때문으로 풀이된다. 과연 합동은 이런 ‘보수교단’ 백석의 모습에 ‘쯧쯧’ 혀를 찰까, 아니면 ‘그럼 우리도…’ 하며 조바심을 낼까.
‘같으면서 다른, 다르면서 같은’ 합동과 통합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제비뽑기’다. 합동은 지난해 총회에서 다수 총대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직선제 전환’을 검토했지만 결국 제비뽑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직선제에 대한 총대들의 강한 열망이 확인돼 올해 총회에서 직선제가 도입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이 논의는 큰 충돌 없이 ‘제비뽑기’의 승리로 돌아갔다. 지난 해 제비뽑기와 진선제를 절충한 이른바 ‘선거인단’ 제도가 찬반 양진영의 치열한 공방 끝에 부결된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형식 상’ 찬반 모두의 의견이 개진되긴 했어도 대세는 이미 제비뽑기로 굳어진 뒤였다.
반면 예장 통합은 이번 총회에서 기존 직선제를 더욱 공고히했다. 총회에서 일명 ‘맛디아식’ 제비뽑기가 새로운 임원선거 방식으로 대두됐지만 투표 끝에 거부됐다. 투표인원 840명 중 이 제비뽑기에 찬성한 이들은 고작 165명 뿐이었다. ‘같으면서 다른, 다르면서 같은’ 합동과 통합의 모습이다.
‘총대’는 없고 ‘목소리’만 난무하는 총회
각 교단의 총회는 앞으로의 1년, 어쩌면 수십년의 미래를 결정할 매우 중요한 자리다. 특히 한국교회 최대 교단인 합동의 총회라면 그 영향력이 교단을 넘어 한국교회 전체에 이른다.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 모든 사안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정치적 행동과 고성(高聲), 인격모독적 발언과 총대답지 못한 태도 등은 철저히 반성하고 고쳐가야 한다.
합동의 이번 총회에서, 아니 그 이전 총회서도 항상 눈에 거슬렸던 점은 ‘군중심리’에 따른 주장이었다. 총회에 1천명이 넘는 총대들이 모이다보니 ‘나’는 모습을 감추고 실체 없는 ‘목소리’만 난무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 앞에서 합리적으로 주장을 관철하기 보다 군중에 숨어 ‘감정을 분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것이 무서운 건, 이런 군중심리를 이용해 정치적 목적으로 총회를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비겁하고 쉽게 내린 ‘무리의’ 결정은 결국 준엄한 심판으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