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중학교 시절 친구 김수진(24)씨는 일본 민영방송 니혼 TV가 소치올림픽 직전 만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동안 어디서도 하지 않았던 김연아의 이야기를 꺼내놨다.
세계 최고의 7분을 위해 피겨 인생 17년간 고통과 싸웠던 김연아의 진짜 이야기다.
김연아는 피겨를 시작한 1996년부터 부상 때문에 괴롭지 않았던 적이 없다. 2006년 시니어 데뷔 후 외부에 알려진 부상 부위만 해도 허리, 고관절, 발목, 발바닥 등 수도 없다.
2011년 4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을 끝으로 김연아는 2년 여 동안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직후 "빙판을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다.
김연아 주치의인 나영무 박사(52)는 지난달 인터뷰에서 "스무 살 이후부터 김연아의 척추는 왼쪽으로 10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17년 동안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점프하고 회전하며 오른발로 착지하는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서다.
이 때문에 김연아는 똑바로 서 있기도, 하이힐을 신기도 힘들다.
나 박사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유치위원회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2011년, 김연아가 하이힐을 자주 신었다. 그때 오른발 통증이 심했다"면서 "김연아 오른발의 신체나이는 40대로 보면 된다. 평소엔 운동화만 신는다. 하이힐을 신으려면 은퇴 후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아는 이런 고통 속에서 2010년 밴쿠버 금메달을 이뤄냈다. 피겨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후 김연아는 미련 없이 선수 생활을 접으려던 생각까지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김연아는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2012년 7월 김연아는 "소치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김연아는 "한국 피겨를 위해 현역 선수로 해야할 일이 있다"고 했다.
2011년 김연아는 평창올림픽 유치전에서 전면에 나섰다. 유창한 영어 프레젠테이션으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그는 평창 유치가 최종 확정되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연아는 후배들에게 '올림픽 출전권'이란 선물을 안기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피겨 후배들을 위해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몸으로 2013 런던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섰다. 그리고 이 대회 우승으로 3장의 올림픽 출전권을 가져왔다.
피겨 인생 17년 동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김연아는 피겨여왕, 세계기록 보유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빙상계의 여신으로 자기매김했다.
김연아가 소치에서 보여준 피날레 '아디오스 노니노' 뒤에는 그의 눈물과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다시 한 번 기꺼이 받아들인 김연아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은반 위의 여신이 되기까지 숨겨진 아픔과 고통들, 뒷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김연아는 올림픽 2연패라는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다시 쉼 없이 달려왔다. 무서운 신예 율리아 리프니츠카야의 등장으로 더욱 세간의 이목이 집중하게 된 여자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는 마지막무대를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된다.
김연아는 소치동계올림픽을 끝으로 길다면 길었던 선수생활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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