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민 목사   ©오렌지카운티제일장로교회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총회의 3대 총회장을 지낸 교단의 어른이시기도 하셨다. 목사님은 주로 북가주 지역에서만 오래 사역하셨기 때문에 나 개인적으로는 만나 뵐 기회가 없었다.

그렇지만 발인예배의 설교를 맡은 까닭에 목사님의 생애의 발자취를 좀 더듬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다 인터넷을 통해 목사님에 관한 자료들을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목사님의 연세가 89세 이고 최근 몇 년 간은 많이 연로하셔서 거의 활동도 없으셨다고 하는데 인터넷에는 의외로 목사님의 흔적들이 적지 않았다.

인터넷의 검색기능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목사님 이름 석자만 가지고도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정보 중에는 며칠 전 목사님이 소천하신 직후 각 언론사에서 보도한 장례식 안내로부터 목사님이 젊은 시절 출판하셨던 빛 바랜 성경공부 책의 모습도 있었고 심지어는 거의 오륙십 년 전 한국에 계실 때 어느 노회에서 일을 할 때의 노회록까지 있었다. 일반인들이 찾을 수 있는 정보가 이 정도이니 조금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검색을 하면 개인에 관한 별의별 정보들을 다 얻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현대인들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생생한 흔적들을 남기고 간다. 흔적 정도가 아니라 더러는 돌아가신 분들이 산 사람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한다.

자주 듣는 미국 크리스천 라디오 방송을 틀면 얼마 전 돌아가신 척 스미스 목사님이 정확히 예전의 그 시간대에 그대로 나와서 설교를 하고 계시고 심지어는 어느 기관의 광고에도 등장해서 이 기관은 믿을 만한 기관이니 적극 이용하라고 추천까지 하신다. 모르는 사람들이면 저 분이 돌아가신 분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이렇게 되면 언젠가는 누가 살아있는 사람이고 누가 죽은 사람인지 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흔적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어느 시대 보다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예전에 천국을 갔다 왔다는 어떤 분들이 하나님 앞에 서자 자신의 전 생애가 영화의 필름처럼 보여지며 순간순간의 삶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제는 굳이 하나님 앞이 아니라도 컴퓨터만 돌려보면 한 사람의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보여질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이 한편으론 신기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두렵기도 하다. 사람 앞에 애써 감추어왔던 나의 부족한 모습이 죽은 후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그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일 것인가? 반대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선을 쌓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울 것인가. 이래저래 우리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더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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