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은 없다. 그래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기둥' 이규혁(36·서울시청)은 '영웅'이다.
이규혁이 1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 클러스터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벌어진 2014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레이스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이규혁은 세계 정상급 스프린터로 활약하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써 온 인물이다.
그같은 이규혁이 올림픽에 나선 것은 소치올림픽이 6번째다. 그는 1994년 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부터 이번 대회까지 이규혁은 매번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동·하계를 통틀어 한국 선수가 올림픽에 6회 연속 출전하는 것은 이규혁이 최초다.
하지만 유독 올림픽 메달과는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첫 올림픽인 1994년 릴레함메르대회에서 500m 36위, 1000m 32위에 머물렀을 때만 해도 이규혁은 "아직 어리니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 500m 8위, 1000m 13위에 그쳤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3개 종목(500m·1000m·1500m)에 나섰으나 어느 종목에서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그는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500m에서 17위에 머물렀다. 1000m에서는 1분09초37을 기록, 4위로 레이스를 마쳐 메달을 품에 안는데 실패했다. 당시 동메달을 딴 에르벤 벤네마르스(3위·1분09초32)와 이규혁의 격차는 불과 0.05초였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도 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이규혁은 500m에서 15위로 부진한 뒤 1000m에서도 9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당시에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것이 슬펐다"며 눈물을 흘렸던 이규혁은 4년 뒤 소치에서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던졌다.
이번에는 아예 메달권과 거리가 멀었다. 결국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도 메달은 이규혁의 차지가 되지 않았다.
운동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영웅이다.
현재 남자 단거리에서 최정상급 실력을 자랑하고 있는 선수들은 이규혁보다 8~9살이 어린 선수들이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단거리 간판' 모태범(25·대한항공)만 해도 이규혁보다 11살이 어리다.
이번 올림픽에서 남자 500m 금·동메달을 딴 로날드·미셸 멀더(이상 28·네덜란드) 쌍둥이 형제와 은메달을 목에 건 얀 스미켄스(27·네덜란드)도 이규혁보다 8~9살이 어리다.
이들은 주니어 무대에서 성장하면서 이규혁을 보고 자랐다. 이규혁이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4차례(2007년·2008년·2010년·2011년) 종합우승을 차지하고, 두 차례 세계기록을 경신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소치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정보시스템인 '인포 2014'에 소개된 미셸 멀더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자신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이규혁을 꼽고 있다.
이규혁 또한 "현재 뛰는 선수들이 어릴 적부터 나를 봐왔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도 보았기에 대접하고 존중해준다"며 "다들 (내가)마지막 올림픽인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응원해주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 이규혁은 떠나지만, 이규혁이 빙속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남아 있다. '올림픽 무관'이지만 이규혁이 영웅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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