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자유와 관련해 좋아하는 영화는 '쇼생크의 탈출'과 '파피용', '야성의 엘자'와 같은 명화들이다. 흥미로운 공통점은 세 영화 모두 자유와 자연이야 말로 최고의 행복임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미스테리와 모순, 나아가 역설적인 인생들이다. 앞의 영화들의 주인공들처럼, 감옥에서 극적인 탈옥을 해야 행복하다고 할 텐데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감옥에서도 노래하고 행복해하고 심령의 자유를 누린다. 말 그대로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미스터리다.
우린 이런 점을 성경에서 몇 군데를 통해서 잘 볼 수 있다. 먼저 사도행전 16장에서의 바울과 실라의 감옥에서의 노래와 예배 소리를 통해서 맛볼 수 있다. 절망과 저주와 어둠만이 가득한 깊은 옥중에서 이들은 불평하거나 저주하고 자살하기보다 심령 깊은 곳에서 노래하고 예배한다. 옥중에 있어도 심령이 자유로운 인생들이다.
예레미야 33장에서도, 비록 가택 연금 상태였지만, 주님의 음성은 자유롭게 임했고, 예레미야 조차도 결코 심령이 자유로운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밧모섬에서 유배 중이었던 사도 요한은 어떠한가! 인간적으론 세상과 유리된 곳이요 관심에서 멀어진 곳, 절망의 장소인 듯한 황량한 섬 가운데서 그는 어떠한가? 흥미롭게도, 놀랍게도 그 유배의 땅에서도 그는 주의 음성을 들었고 심령이 매임을 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세상적으로는 감옥이요, 절망이요 절체절명의 순간이요, 그런 장소일지라도 노래하며 휘비람 불고 다시 일어나 예배하며 감격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역설이요, 미스터리이다.
물론 이런 역설의 원동력은 자유로운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일 것이다. 이 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감옥에 있어도, 유배지에 있어도 결코 매이지 않는 '심령이 자유로운 인생'이다. 때로는 그리스도를 위해 이 세상에서 '자발적 유배' (voluntary exile)도 떠나기도 한다. 왜냐면 우리 성도들은 어디를 가나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는 심령이 자유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F.F. 브루스는 사도 바울을 '심령이 자유로운 사도'(apostle of the heart set free)라고 불렀던가! 이것이 위대한 바울만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모든 성도들의 별명이요 이름이요, 역설과 미스터리가 아닌가!
오늘도 여러분은 필자와 함께 갇혀있어도 자유로운, 자유로워도 그리스도를 위해 유배 생활하는 이 '역설적인 미스테리의 주인공'이 되어보지 않겠는가.
글ㅣ심현찬 목사(워싱턴 트리니티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