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의 생긴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접하고 서신을 기록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부활 신앙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몸의 부활을 믿지 않거나, 또한 몸이 부활한다면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있었다.

바울은 이에 대한 가르침에 앞서 그가 받고 전한 복음을 상기시킨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됨, 부활, 현현의 사건이며 이것을 믿음으로써 영생 얻는 구원에 이른다.
그가 전한 복음은 모든 사도들이 함께 전한 복음이며, 그들은 이 복음을 믿었다(11절).

그리스도에 대한 이 같은 선포가 그의 부활을 분명히 전파하고 있다(12절).
곧 사도들이 전승하고 그가 전한 복음 안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떤 사람들은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이 없다고 하는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부활하지 못했을 것이다(13절).
그렇게 되면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부활이 핵심)도 헛것이 되고, 그것을 받아들인 그들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만다(14절).
그런데 그들은 사도들에게 받아서 선포한 복음을 듣고 믿지 않았는가 말이다.

만일 어떤 이들의 말대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일이 없다면 그것을 전한 사도들은 하나님의 거짓증인이 되고 말 것이다(15절).
왜냐하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난 일이 없으면 그들의 믿음도 헛되고 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17절).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믿음'(14절)이 아니라, 죄사함의 구원을 얻는 믿음을 말한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자(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멸망하였을 것이다(18절).

부활에 대한 신앙과 죄의 문제는 긴밀하게 상관된다.
그리스도및 신자의 부활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죄의 문제도 이 세상의 것으로 극복하지 못한다.
하늘(만물 위)로부터 오신 인자만이 죄사함의 권세가 있는 것이다(막 2:10).
물론 세상에 속한 종교도 죄를 깨닫게 하고 정화시키는 의식을 수행한다.
또한 종교적 감정에 도취되어 죄를 잊어버리고 간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죄의 세력은 세상에 속한 것으로 결코 극복하지 못한다(엡 2:1-3).
만물 위에 속한 하나님의 은혜가 죄를 사하고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엡 2:5).
만일 기독교 신앙이 세상에 속한 종교성의 범주에 들어가면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죽으면 죽어서도 죄에 대한 심판을 당한다(히 9:27).
그래서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멸망하는 것이다(18절).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이다(19절).
본 절에 대한 해석에 오해가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인 삶이 어렵고 힘든 것에 대해 내세에 보상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 절의 뜻은 신자의 소망이 이 세상의 삶으로 국한된다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비참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도 구원도 부활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전제로 하고 있다.
아담 안의 모든 사람은 죽은 자요, 하나님과 분리된 실존으로 죄 아래에서 살다가 죽은 비참한 운명을 당한다.
여기에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됨, 부활의 복음은 영생을 얻게 하고 영생을 누리게 한다.
이 세상에서 영생의 삶을 살게 할 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그 몸이 부활하여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롬 8:23).
그 시점은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이며 몸의 부활로 성취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부활도, 선포된 복음을 믿는 것도, 죄용서도, 죽은 자의 부활도 믿지 아니하면 기독교 신앙 전체가 웃음거리가 되고 망상이 되고 말 것이다(칼 바르트, 고린도전서 15장 주석).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아무 의미가 없다.
부활을 믿기에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짊어진다.
그것은 외적으로 비참해보이나 우울한 기분에서 억지로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명이 나타나는 확고한 믿음으로 기쁨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복음의 핵심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반드시 부활한다.
그런데 부활신앙을 부인하면 죄아래에 살다가 비참한 결말에 이르는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도 그렇게 살면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불쌍한 자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묵상 기도

아버지...
누가 가장 불쌍한 자이옵니까?
복음을 몰라 죄 가운데 살다가 망하는 세상 사람이 아니옵니까?
하오나 그들보다 더욱 불쌍한 자가 여기 있나이다.
전승된 복음을 알고도 여전히 세상에 소망을 두는 자이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아버지여...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당신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나이다.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는 지나간 때로 족하나이다.
나를 위해 고난과 죽음을 당한 아들의 옷을 입게 하소서.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치나이다.

아버지...
어찌하든지 아들의 죽음을 본받는 자 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하고자 하나이다.
오늘도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하는 신앙으로 살기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죄 가운데 살다가 죽음이 이르는 세상의 불쌍한 자를 당신께로 인도하게 하소서.
주여, 저들보다 더욱 불쌍한 자로 사는 것이 두렵습니다.
주여 때마다 일마다 도와주소서. 아들의 죽음에 연합되기를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와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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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말씀묵상선교회 #서형섭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