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량 목사   ©워싱턴영광장로교회

"하나님! 저로하여금 절망케 하소서.
당신에 대한 절망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미칠듯한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지나가게 하소서
갖은 모욕을 겪도록 하옵시고
내 스스로 지탱하는 것을 도우지 마옵시고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소서
나의 모든 것이 완전히 허물어 진 뒤
그때 나에게 가르쳐 주옵소서
그것이 당신께서 행하신 일이었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보내셨음을 알게 하소서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겠사오나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이로소이다. "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 소도시 칼프에서 태여나 여섯살 되던 해에 부모를 따라 스위스에 귀화, 바젤에서 3년 동안 살다 아홉살때 다시 고향 칼프로 돌아온다. 14세에 신학교에 입학하나 신경쇄약증세가 발병, 적응치 못해 자퇴하고만다. 이후 서점의 종업원, 시계공장의 견습공을 전전하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영혼의 방황을 계속하였다. 그러다 1899년 처녀시집 '낭만의 노래', 산문집 '한 밤중의 한시간'을 발간하면서 시인의 길을 걷게 되면서 자신을 찾게된다. 1919년 소설 데미안을 발표하므로 노벨 문학상에 한걸음 다가서게 된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주의적 태도로 극우파들의 애국주의에 반대했다가 독일에서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사상적 편향은 어렸을때부터 꿈꾸어온 인간의 자유로의 해방이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그의 사색과 명상은 신과 인간사이에서 갈등을 계속하게 하였고 그결과 많은 철학적 명제 혹은 종교적 명제를 담은 시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절망케 하소서"가 바로 그 예이다. 어쩌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통달치 않고서는 나올법 하지 않은 그런 비범시이다.

한국의 기도 시 가운데 내가 즐겨 묵상하는 몇편이 있다. 예컨대 "어두운 바닷물이 / 어쩌면 허이연히 트일성도 싶을때 / 불현 나를 부른 당신은 누구십니까..." 로 시작되는 조남기의 "당신은 누구십니까?"나 지금은 국회의원으로 외도하는 도종환의 "나는 지금 나의 아픔 때문에 기도합니다. / 그러나 오직 나의 아픔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하는 "아홉가지 기도" 또한 애송시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 만한 것은 다시 없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헤세나 김현승의 기도시는 인간의 하나님께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기도시는 시가 아니라 기도문이 되어도 좋다. 김현승에게서 문학개론을 배운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얼마전 우연찮게 초로의 목사가 된 그 분의 아들을 만나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벌써 나의 영혼이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되었는가? 아! 가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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