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바울은 고린도교회내 음행의 문제를 다루면서 결혼에 대한 교훈을 하고 있다.
그 중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함께 하는 혼합결혼에 대해 믿는 배우자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것을 권하였다.
이 같은 교훈을 통해 그가 내린 결론, 곧 현재의 자리에서 주를 섬기라는 말씀을 일반화시켜 적용하고 있다.

성도는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정해주신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살아갈 것이다(17절).
이것은 그가 모든 교회에 세워준 원칙이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미 할례를 받은 사람은 그 표시를 지우려하지 말 것이다.
만일 할례 받지 않는 상태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할례를 받으려 하지 말 것이다(18절).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만이 중요하다(19절).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상태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20절).

그가 노예였을 때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것 때문에 근심하지 말 것이다.
그러나 혹시 자유를 얻을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활용할 것이다(21절).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노예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이다(22절).
혹은 해방노예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노예이다(22절).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값으로 산 것이니 사람들의 노예가 되지 말 것이다(23절).
각 사람을 부르심을 받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머물면서 하나님께 책임을 다할 것이다(24절).

구원은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사건으로 이는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이다(1:2).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를 개종하게 하였고 복종의 삶으로 이끈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가 어떤 상황, 어떤 처지, 어떤 상태에 있든지 복종의 삶으로 하나님께 책임을 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새로운 자리나 새로운 직업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의 부름이다.

한편 바울은 새로운 의미로의 부름에 대해 여러 가지 표현을 병행하여 사용한다.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종의 삶이 중요하다(19절).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갈 6:15).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타나는 믿음이 중요하다(갈 5:6).

현대 교회 안에서는 구원의 의미를 변곡시키는 시도가 있어왔다.
그것은 구원의 의미를 자기가 처한 상황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신앙의 출발점이 계시(말씀)에 있지 않고 상황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구원이 가져온 결과를 인생의 외형적 변화로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급기야 기독교를 미신화 시키는 우를 범하도록 만들기까지 하였다.

참된 구원은 인생의 외형적 변화에 있지 않다.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존재로, 새 생명으로, 새 언약백성으로 사는 것이다(갈 6:15).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는 것이다(고전 7:19).
그로 인해 외형적 변화가 있다면 오직 하나 '사랑으로 나타나는 믿음'뿐이다(갈 5:6).

♦묵상 기도

아버지여...
오랫동안 상황변화를 위해 믿는 자였습니다.
상황이 변하는 것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으며 열심을 내는 자였습니다.
진리도 생명도 언약도 알지 못한 채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였습니다.
신앙은 갈수록 혼미하며 이중적이며 외식하는 자가 되었나이다.

아버지...
내게 임한 당신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웠습니다.
티끌과 재 가운데에 누운 자에게 진리의 빛이 들어왔습니다.
상황변화를 구하면서 열심을 내던 신앙, 얼마나 허탄한 것이었는지요.
무지하고 패역한 죄인을 어찌하여 그리도 오래 참으셨는지요?

오, 아버지...
이제는 압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옵니다.
새 생명으로 사는 것, 말씀으로 사는 것, 사랑을 나타내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넘어지는 자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다시 외형을 보면서 복종하기를 주저하는 자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재를 무릅쓰고 십자가로 가오니 나를 멸하시고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사랑을 나타내는 믿음으로 당신이 보내신 종들을 섬기게 하소서.
당신이 보내신 이들을 영생으로 인도하게 하소서. 주여,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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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말씀묵상선교회 #서형섭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