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고린도의 일반적인 현상은 도덕적 타락이며 그 중에서도 성적 문란함이다.
거룩한 성도로 부름 받은 교회 안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더러 나타났다.
이것은 소위 몸(육체)을 더럽다고 여겨 남용하는 영지주의 분파에 의한 것이다.
그들은 몸에 대해 금욕주의나 방종주의의 형태로 나타났다.
방종주의를 따른 이들은 '모든 것이 가하다'는 슬로건(표어)을 걸었다.
그리고 창기와의 연합까지도 거리낌 없이 자행하였다.
이에 대해 바울은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 몸을 이루며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하면서, 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가르쳤다.
한편 몸에 대한 금욕주의를 따르는 이들은 '남자가 여자에게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슬로건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성적 타락을 방지하는 대비책으로 제시되고 있다(1절).
물론 금욕주의 주창자들은 음행을 피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혼생활내의 성생활까지도 부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은 '남자(아담)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창조사상과 모순된다.
비록 타락하면서 이 같은 창조사상이 무력하게 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성도들의 경우 하나님의 본래적인 뜻인 '결혼'이 합당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성도들의 결혼생활및 성생활에 대하여 때로는 주의 명령으로 때로는 자신의 견해로 가르치고 있다.
그 내용은 크게 네 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1)일반적인 결혼생활(1-7절), 2)독신생활과 이혼(8-24절), 3), 처녀의 결혼문제(25-38절), 4)과부의 재혼문제이다(39-40절).
바울이 제시하는 결혼과 관련한 인생의 형태는 독신, 결혼, 이혼, 재혼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함축하는 한 가지 의미는 종말론적 삶을 요청하는 것에 있다.
성도는 결혼과 관련하여 어떤 형태를 띠고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곧 성도의 인생은 결혼과 관련한 형태가 어떠하든 현재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누리고, 그 은총이 완성되는 날을 기다림을 목적으로 한다(25-38절).
바울은 음행을 이유로 결혼을 금하는 시도에 대해 도리어 음행을 피하기 위해 결혼하라고 말한다(2절).
물론 결혼은 음행의 예방책만이 그 목적이 아니며 그러한 목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부할 수 없는 성적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이 결혼제도 내에서 발산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금지한 방식으로 발산된다.
따라서 결혼은 몸의 헌신을 요구하며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에게 성적인 의무를 다해야 한다(3-4절).
다만 종교적 목적을 위해 이 의무를 유보할 수 있으나 다시 재개해야 한다(5절).
이는 사탄이 성적 무절제함을 틈타 시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5절).
그런데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이 되기를 소원한다(7절).
하지만 각각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다(7절)
바울은 독신생활을 하면서 주를 섬겼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이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이 말은 언뜻 모든 사람이 독신생활을 하기 바란다는 말로 들린다.
이것은 사실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소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다'는 해석의 주의를 요한다.
해석의 요체는 바울이 사용한 동사의 시제와 관련되어 있다.
바울은 사람이 달성할 수 없는 소원을 표현할 때에는 동사의 '미완료시제'를 사용한다(갈 4:20; 롬 9:3).
반면 달성할 수 있는 소원을 표현할 때에는 동사의 '현재시제'를 사용한다(고전 11:3; 14:5).
오늘 본문 7절에 나오는 '원하노라'는 모든 사람이 달성 가능한 '현재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독신생활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바람은 자신이 홀로 있어도 주안에서 부요하듯, 모든 사람이 주안에서 정욕의 유혹을 물리치며 부요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바흐만).
그가 독신상태이든 결혼 상태이든 이혼상태이든 재혼상태이든 그는 주 안에서 부요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떠한 상태에서든지 하나님께 대한 복종의 삶으로 나타나야 하며 그로 인해 영적인 부요함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에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은 죄의 즐거움을 무력화시켜 몸과 영이 거룩하게 유지된다.
최후로는 그 몸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게 된다.
신자의 몸은 성전이며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것이 근본목적이다.
그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후 5:9).
이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날 때에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대로 받기 때문이다(고후 5:10).
그러므로 신자는 결혼에 대한 인생의 상태가 어떠하든 종말론적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의 외형은 다 지나간다(31절).
독신이든 결혼이든 이혼이든 재혼이든 모든 것은 지나간다.
결혼에 대한 형태는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마 22:30).
신자의 몸은 영화롭게 변화되며 모두가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다.
한번 허락된 인생,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만이 영원하다.
그 몸으로 자기를 즐기지 아니하며 주를 위해 바친 인생은 영원히 복되다.
♦묵상 기도
아버지여...
어찌하여 인생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나이까?
사람마다 자기 인생을 위하여 살며 결혼생활도 그러합니다.
한시적으로 주어진 인생, 오직 나를 위해 살며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받아 영원히 멸망에 이르는 인생이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인자와 긍휼을 진실로 무궁하나이다.
아들의 말을 듣고 보내신 이 당신을 믿어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오나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잃었습니다.
이생에 묻혀 이생의 삶을 영원한 것으로 생각한 무지함이 드러났습니다.
내게 행하신 일, 진실로 참되고 의롭습니다.
아버지여...
나를 위한 인생은 지나갔습니다.
몸으로 있으나 떠나 있으나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옵니다.
비참한 자 되었으나 이전보다 더욱 주를 위해 드리는 삶을 살게 하셨나이다.
인생의 형태가 어떠하든 모든 상황에서 주로 인한 부요함을 누리나이다.
단회적인 인생, 신명을 다하여 주를 섬기는 자 되게 하소서.
정한 때, 당신의 품으로 인도하소서. 언제든지 달려가겠나이다.
오, 주여! 당신을 위한 인생, 진실로 영원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와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