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바울은 하나님이 사도들을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끄트머리에 두셨다고 한다(9절).
당시 로마인의 놀이는 원형경기장(아레나)에서 사람들이 검투사나 사나운 짐승의 제물이 되어 죽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잔혹한 일은 오늘날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는 것과 다름없는 놀이였다.
구경거리가 되어 죽는 이들은 대부분 포로로 잡혀온 자들 중에 전혀 값어치가 없는 자들로서 개선식에서는 끄트머리에 두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이 바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비참한 자리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도의 비천함이나 천박함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사도의 긍지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도는 원사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린 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운명을 그대로 떠맡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렇게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도리어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로운 자가 되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표로 삼아 약하고 멸시를 받으나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로 강하고 존귀한 자가 된 것이다(10절).
사도는 지금 그리스도의 비천한 삶을 그대로 살고 있다.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집이 없이 유리방황하고 있다(11절).
사도는 자신의 손으로 친히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였다(12절).
그들은 저주를 받지만 축복해주고 핍박을 당하나 참고 인내하며 모욕을 당하나 다정한 말로 권면하였다(13절).
서신을 쓰는 바로 그 순간까지 세상의 쓰레기와 만물의 찌꺼기가 되었다(13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는 그에게서 보냄을 받은 자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전한 메시지를 전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살아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여셨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는 온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아들을 십자가에 두신 하나님은 이제 아들이 보낸 사도들을 그 자리에 두신다.
사도의 삶의 자리는 세상이 볼 때 수치스럽고 가증스럽기까지 한 십자가의 비참한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죽이기로 작정한 자처럼 세상의 수치거리요 사람들의 구경거리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은 자들한테까지도 수치와 비방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사도의 자리는 사도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처할 자리이다.
바울은 사도로서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으라고 촉구하고 있다.
아, 누가 이 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을 믿어 세상에서도 자랑거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어찌 주님을 위해 수치스런 자리에 머물 수 있다는 말인가!
♦묵상 기도
아버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사도라 칭함을 받으나 정작 사도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께서는 사도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처럼 끄트머리에 두시는데, 저는 정반대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이 되게 하시는데 저는 세상에서 보란 듯한 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만물의 찌끼처럼 되게 하시는데 저는 만물 안에서 두드러진 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오, 아버지...
십자가에서 내려와 십자가를 전하려 한 자였나이다.
모순된 사도, 공의로운 심판은 진실로 참되고 의로웠습니다.
모든 것을 가져가심이 아니라 나를 제 자리에 두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로 자랑거리를 다 거두어 가심은 참 사도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로소 세상의 구경거리,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아버지여...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사도의 자리는 여전히 가시방석 같습니다.
당신이 두신 사도의 자리를 박차고 세상의 보란 듯한 자리로 나가고 싶나이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이들의 눈을 의식하고 그 눈을 두려워하나이다.
비천한 자리에 있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세상의 구경거리 되신 그리스도, 그가 나의 주가 되시나이다.
비천하나 당당히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들을 십자가에 달리신 주께로 인도하게 하소서. 주여,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와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