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는 어른을 보고 배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 어릴 적부터 실수를 하는데 그 실수를 일깨워 주는 것은 어른들인 부모, 선생님 등이다. 어른들의 인생의 연륜은 어린아이의 길을 이끌어주고 실수를 일깨워준다. 모든 젊은 사람은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어른이 되면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립된 인격체로 대접을 받고 남들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간섭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빨리 이 간섭의 기간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만일 어른들의 이 간섭의 기간이 없다면 어찌될까?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길을 잃고 옳지 않은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동양에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더욱 더 어른을 공경하도록 어릴 적부터 배워왔다. 우리말의 교육자를 칭하는 선생님(先生)은 한자로 먼저 난 사람이란 뜻이며 중국어에서도 先生은 영어의 Mr.에 해당하는 높임말이다. 나이가 많으면 어른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나이가 많아도 어른 구실을 못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또한 성경은 어른같이 되라고 하지 않고 어린아이같이 되라고 한다. 잠언은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스승이다"라고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젊은이들 가운데서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나며 현명한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제갈 공명이 융즁대를 말할 때 20대 초반이었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질 때는 10대였으며 예수님은 삼 십대 초반에 공생애를 하셨다.
어른이 되면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다만 줄어들 뿐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지도자가 되면 이 어쩌다 있는 실수는 어린아이 때와 같지 않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어느 TV대담 프로그램에서 홍정길 목사님이 나이 들어서 아쉬운 게 무엇이 있으시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다. "제가 젊었을 적에는 잘못을 하면 저를 질책해 주시는 어른들이 계셨는데 나이 드니 이제 그런 분들이 없습니다." 어릴 적에 하는 실수는 질책해 주는 어른들이 계시지만 나이 들수록 이런분들이 돌아가셔서 없어지고 나 자신이 어른이 되어 질책할 사람이 없게 된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고 그분의 심판 날을 두려워해야 한다. 심판 날 이전에는 누군가가 범죄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않는다면 질책하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 기윤실은 교회에서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가 어른이고 원로이신 한국교계의 어른들을 질책할 수 있겠는가? 담임하시는 교회, 교단들 모두 말을 아끼고자 할 것이다. 참다운 어른은 윗 어른의 질책 뿐 아니라 아랫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동화에서 어린아이에게 비친 임금님은 그저 벌거숭이 임금님일 뿐이다. 순수한 어린이의 눈으로 교회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어른들이 귀 기울이자.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칠 때 깨어나야 한다. 우리에겐 참다운 어른이 한 분 계신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삼십삼년의 짧은 생애를 사셨다. 그의 머리가 백발이 되지 않으셨어도 이스라엘이라는 로마제국의 변방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자신의 삶을 마치셨어도 그 분은 인류의 참된 어른이셨다.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에 심판자로 오신다. 참된 어른이신 예수님이 일곱 교회에 하신 질책을 가슴속에 되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