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찬 목사   ©미주 기독일보

얼마 전에 한 목사님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 분께서 하신 말씀이 내 마음에 오랜 동안 부담으로 생각이 되어 동역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이 분을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기 보다는, 이 경우를 통해서, 우리 한국과 미주 교계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신앙과 신학은 별개입니다. 신학을 잘하는 사람들이 결코 목회를 잘 하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나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두 가지 유감과 쓸쓸함, 나아가 반성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첫째 유감은, 소위 '신학과 목회를, 신학과 신앙을 상관없는 것'이라고 가르키거나 그렇게 목회하시는 분들의 신앙과 목회가 과연 건강하고 성경적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과연 이 분의 말씀대로, 둘 간의 관계가 서로 적대적이거나 상관이 없는 것인가? 신학을 잘 알면, 목회를 잘 못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반대로, 목회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신학에 무지해야 하는 것인가? 마치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었던 한 교부의 외침을 생각나게합니다.

둘째 유감은, 나를 비롯한 목회자나 교계 리더들, 신학자들이 참으로 큰 잘못을 범한 것이 아닌가라는 유감이자, 반성입니다. 사실 신학을 쉽게 말해서, '신앙의 지도(map)이자 그래머(grammar)'라고 한다면, 신학과 신앙, 신학과 목회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상관관계를 이루어야만 건강하고 성경적인 것일 것입니다. 우리가 굳이 루터나 캘빈, 에드워즈나 심지어 씨 에스 루이스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신학은 철저히 신앙적이고 목회적이고, 교회를 위한 신학이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교계의 목회자와 리더들이 이런 유산을 백안시하고, 한 쪽에서 극단적인 신학만을 위한 신학, 다른 한쪽에서 목회만을 위한 목회로, 그래서 한 쪽에서 극단적 지성주의를, 다른 한 쪽에서 극단적 반지성주의 등으로 나아갔던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교회사에서 계속적으로 잘 드러나는 현상이기도 하지요. 캘빈의 시대에도, 에드워즈의 시대에도 동일하게, 양 쪽의 극단주의가 두드러졌습니다. 현대 영미의 복음주의 역사와 함께, 우리의 한국의 신학교에서의 교육과 교회에서의 신앙 교육에서도 과연 얼마나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결론을 대신한 질문들. 저는 이 글을 결론을 내기 보다, 여러분들에게 단순하지만, 원론적인 질문을 드림으로써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과연 우리의 신앙과 신학은 무관한가요? 목회와 신학은 과연 무관한가요? 신학을 잘하면 과연 목회를 잘 할 수 없고, 목회를 잘 하려면 신학에 무지해야 할까요? 과연 신앙과 신학의 균형, 목회와 신학의 균형, 복음과 지성의 균형, 성령이 충만한 지성이요, 성령이 충만한 신학, 말그대로, 조나단 에드워즈나 로이드존즈가 보여준, '불타는 신학' (theology on fire)', '불타는 목회'는 불가능할까요? 무엇보다도, '복음과 지성이 겸비된 복음주의 명품리더쉽'을 평생 꿈으로 경주하는 저와 우리 연구원에겐 큰 부담과 질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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