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   ©크로스로드한인교회

"아빠, 물어 볼게 하나 있는데요",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는 동료가 너무나 무례한 것 같아 미움이 생기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보는 아들에게 갈등의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것들은 "말없이 비가 오면, 내 우산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며", "바쁘면, 자신의 신발을 신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신발을 신고 가고", "자신이 수고하여 만든 소중한 작품에 손상을 내고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픈데, 상대에게 말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에 처한 것을 알았다.

그런 아들에게 필자가 권고를 한 것은 아무 말 없이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미움을 낳게 되고 상대에 대한 불신의 씨가 커져 한 방을 사용하는 것이 더욱더 불편하기에 "대화를 나누어 나의 마음속에 생각을 보이고, 상대의 말을 들어본 후에 이해하려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같은 민족이지만 한국과 미국에서 자라온 문화적인 환경의 차이와 사람을 대하는 삶의 관습이 다르기에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타인과 대화를 하지 아니하면 상대를 오해 할 수 있는 상황이 반드시 주어진다.

대화는 타인을 알고 이해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도구이기에 그것을 통해 타 문화를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대화를 나누어도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삶의 모습 속에 사랑의 실천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바꿔라", 그것이 곧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한국 나이로 이제 겨우 20살이 된 아이에게 '나 자신을 죽이고, 나의 생각을 바꾸라'는 말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지만, 상대를 대하는 내 마음만 진실 되고 미움만 갖지 아니한다면 누구나 가능한 것이라고 필자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격려를 해 주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소중한 삶을 누군가로부터 보호받으려 할 뿐 아니라 내 생각 속에 타인의 행동과 태도를 가두어 놓고 무조건 변화하기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내 생각이 바꿔지지 아니하고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理致)이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A.D 100년경 무명의 작가가 이런 글을 썼다. "젊을 때는 세계를 바꾸려고 했지만 못 바꾸고 우리나라를 바꾸려 했다. 우리나라도 못 바꾸고 우리 마을을 바꾸려 했지만 우리 마을도 못 바꾸었다. 늙은 사람으로서 우리 가정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전에 내가 나 자신을 바꾸었더라면 우리 가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 가정은 우리 마을에, 우리 마을은 우리나라에, 우리나라는 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말의 핵심은 '세상을 바꾸기를 바란다면 나를 바꾸면 된다.'는 말이다. 나를 바꾸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뿐 아니라 세상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력이 더 넓어지기에 세상까지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나를 바꾸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헌신'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곧 나의 이기적인 자아를 죽여 희생함으로 주변을 살게 하는 '한 알의 밀알'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관심거리는 '웰빙'과 '힐링'인데 웰빙은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며 힐링은 마음에 받은 상처를 그냥 두지 아니하고 상처를 치유하여 몸에 쓴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은 각각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만 좀 더 깊이 바라본다면 이 두 가지의 바퀴는 하나의 몸체를 이루며 굴러가는 것이다.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먹는 것이 살로 가지 아니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발견한 것 중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에 상처를 갖지 아니하고 밝고 누군가를 위해 사랑을 나누어 주고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건강한 음식으로 다이어트에 좋고, 항암효과, 골다공증, 심혈관 질환예방의 기능을 가진 검정콩을 보면 콩 전체가 검정색인데 유독 볼펜으로 백지에 찍었을 때 점만 한 크기의 모양을 한 하얀색을 한 부분을 볼 수 있다. 콩 하나의 결정체가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능력이 나지 아니하지만 콩 하나가 땅에 묻혀 썩으면 그 속에서 하나의 결정체 속에 있는 볼펜의 점만 한 하얀 부분이 터져 거기에서 뿌리와 싹이 나와 열매를 맺게 되는데 콩 농사를 짓는 사람의 이야기에 의하면 "콩 700개의 알을 심으면 40킬로 콩을 수확"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비율로 본다면 콩의 700개의 무개가 1파운드라고 한때 40킬로의 콩의 수확의 열매는 80배의 소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확의 결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말씀을 듣기를 바라는 무리들에게 씨 뿌리는 비유와 겨자씨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신 말씀과도 같은 것이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막4: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막4:28),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4:3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이러한 것을 군중들에게 보여주신 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신 일이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가 한 소년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소중히 전달한 후, 예수님께서 그것을 축사하시고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

공동체 안에서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작은 헌신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소중한 마음이 있을 때 풍성한 결과의 기적을 가져오는 것이다.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사랑을 통해 나를 희생하는 것인데, 그것이 곧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완성하신 분이 바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사랑의 실체가 되신 분이다.

예수님은 수많은 예화를 통해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 "씨앗이 그대로 있으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부활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부활의 영광을 가져오는데 이 열매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순교로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복음의 열매가 온 땅에 열리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죄인 된 인간을 위해 죽으신 것처럼 나의 자아를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죽이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베풀며 살아간다면 내가 속한 곳이 천국일 것이며 그리 아니할 지라도 감사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사랑의 결실이 반드시 주님의 때에 풍성히 이루어질 것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김칠곤칼럼 #김칠곤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