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 음침한데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로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셀라)" (시 88:6-7)

시인은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 음침한데 두셨사오며"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깊은...어두운 곳...음침한데" 라는 표현들은 모두 복수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이 웅덩이는 어두움과 음침함으로 겹겹이 쌓여있어서 삶에 대한 소망이 전혀 없는 그런 곳임을 시인은 두려움으로 목도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부성적 자비를 육신의 부모의 마음에 비교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그런데 육신의 부모보다 더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자녀를 이렇게 깊은 웅덩이나 음침한 곳에 둘수가 있다고 시인은 표현하고 있었을까요? 여기에서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이해하기 어렵고 불합리한 사실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있는 시인의 모습입니다.

시인은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행하시는 일들이 노하심으로 인함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은혜임이 분명합니다. 요나도 이러한 하나님의 노하심에 대한 체험을 스올의 뱃속에서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욘 2:3). 요나와 시인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교훈은 이러한 불행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행을 겪고 있는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는 이러한 일이 시인에게 일어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불행의 깊은 웅덩이에 놓여있는 성도님들에게 주님께서 은혜로 이러한 믿음을 갖게 하여 주실 것을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 88:6-7) "시인은 이제 자신이 겪은 환난은 모두가 하나님의 손에서부터 나온 것임을 보다 명확하게 깨닫고 있다. 진실로 자기를 때리신 것이 하나님의 손이라는 것과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닫지 않고서는 자기를 하나님께 신실하게 내맏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지자가 하나님께 가까이하면 할수록 그의 슬픔은 더욱 깊어졌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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