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시 77:1-2)

시인은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리니" 또 한번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이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 음성으로 기도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까요? 그런데 왜 시인은 기도하는 "내 음성"을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을까요? 여기에서 시인이 표현하는 "내 음성"에는 고난중에 겪었던 값진 신앙체험이 담겨 있다고 느껴집니다. 이는 11절의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라는 시인의 표현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체험은 하나님께서 "내게 귀를 기울이시로다"는 믿음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신 한 세리의 기도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18:13). 주님께서는 성전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했던 이 세리의 기도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기도는 그렇지 못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세리가 부르짖었던 음성이 바로 오늘 시인을 통해 듣게 되는 "내 음성"의 부르짖음이리라 유추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시인은 고난중에 주님을 찾았고, 자기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외에 다른 어떠한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고 들려집니다. 시인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게 되는 위로에 소망을 두었음이 분명합니다. 오늘도 고난중에 있는 성도님들의 기도가 주님께 들려 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상한 몸과 마음을 치유하시는 말씀의 능력을 통해 위로받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77:2) 이 말씀의 의미는 시편 기자가 자기의 쓰라린 슬픔에 대한 위로와 탕감을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하나님께 자기손을 뻗었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슬픔이 비록 해결될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당하는 슬픔이 우리의 입을 막지 못하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절망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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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요셉의시편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