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최소한 그걸 멈춰야 하지 않겠는가해서 이 자리에 선 것이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태어나 24년간 형극의 세월을 보내다 탈출에 성공해 지금은 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인 신동혁(31) 씨.

그는 1982년 북한 평안남도 개천시에 있는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2005년 중국으로 탈출, 다음해에 우리나라에 입국한 탈북민이다.

미국 언론인인 블레인 하든이 신씨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저술한 <14호 수용소 탈출>은 북한인권 실상을 알리는 바이블이 됐다.

그런 신씨가 지난 20일 방한 중인 유엔인권위원회 위원들을 상대로 북한의 인권 유린실태를 증언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수용소 시절로 돌아간 듯 유년시절, 그리고 청년시절 겪은 고통스러운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연세대 새천년홀에서 열린 유엔인권조사위원회 첫날 공청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자리에서다.

그가 인권위원들을 상대로 털어놓은 기억속 저 너머의 첫 장면은 수용소 시절의 '공개처형' 현장.

수용소측은 일 년에 두 차례 중죄를 저지른 죄수들을 상대로 총살형이나 교수형을 공개적으로 집행했다. 죄목은 기물파손, 수용소 탈출 시도 등 다양했다.

그는 동갑나기인 7세 여자아이가 밀 이삭을 몰래 주웠다가 나무 봉으로 머리를 맞고 목숨을 잃은 괴로운 기억도 떠올렸다.

작업용 미싱을 옮기다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린 뒤 기물파손죄로 손가락을 잘린 일도 그는 담담히 회고했다.

수용소에서 인권이라는 단어는 사치에 불과했다.

배고픔에 쥐를 잡아 껍질을 벗긴 뒤, 날 것 그대로 잡아먹는 일도 수용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그의 어머니와 형은 수용소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힌 뒤 그의 눈 앞에서 교수형과 총살형을 당했다. 신씨가 14세 때 겪은 비극이었다.

수용소 탈출 전날 부자간의 정을 기대하고 마지막으로 만난 아버지는 침묵할 뿐이었다. 수용소는 인륜마저 파괴하는 현대판 '원형감옥'이었다.

다루스만을 비롯한 유엔 조사위원들은 그의 증언을 청취하며 표정이 때로는 심각해졌고 때로는 어두워졌다.

유엔 인권조사위원회가 첫 번째 증인으로 채택한 신 씨가 털어놓는 북한의 인권실상들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다루스만 특별보고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증언이 사실인지 되묻는 이들이 있다고.

신 씨는 이에 대해 "제가 족쇄에 묶였던 자국, 불에 탄 자국, 갈고리에 꿰인 자국, 철조망에 걸려 찢긴 자국이 다다"라고 담담히 답변했다.

이어 "지금은 많은 걸 보고 느끼면서 알고 있다. 최소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말하는 게 인권이란 걸 알고 있다"고도 했다.

북한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14호 수용소에 꼭 가보고 싶다는 바람도 털어놓았다.

지난 18일 방한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자료와 정보 수집 등을 위해 오는 27일 까지 국내에 체류할 예정이다.

조사위원들은 대법관 출신인 마이클 커비 위원장, 마르주끼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소냐 비세르코 세르비아 인권활동가 등 3명이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21일 연세대 새천년홀에서 북한 인권 공청회 이틀째 일정을 이어간다.

위원들은 오는 9월 제24차 인권이사회, 제68차 유엔 총회에 조사결과를 중간보고한 후 내년 3월 제25차 인권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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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증언 #유엔인권조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