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여해(如海) 강원용 목사 소천 7주기(8월17일)를 기념해 18일 오후 서울 경동교회(담임 박종화 목사)에서 대화문화아카데미와 대한기독교서회가 공동으로 '여해에큐메니칼 포럼'을 개최하고 그의 신학과 정신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강원용 목사와 에큐메니칼 운동 - 여해의 에큐메니칼 사상과 활동, 그리고 한국에서의 실천'을 주제로 고인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조명했다.
김 교수는 △여해의 삶과 활동 속에서 에큐메니칼 운동 과의 관계 △여해의 에큐메니칼 신학 사상의 뿌리 △WCC 에큐메니칼 활동시기 학국의 정치-교회적 상황, 그리고 '사이·너머'의 해석학적 눈에 대한 재평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 여해가 말하는 '에큐메니칼 운동'
김 교수는 "우선 강원용 목사는 세계 에큐메니칼 무대에서 논의하고 토론되는 주제들을 단순히 한국사회에 알려주는 번역가이거나 소개자로 멈추지 않았다"며 "1960~90년대 한국사회가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정보화 사회로 변해가는 격동기에, 그는 세계 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지혜와 사상을 한국사회에 성육화하려 했던 부지런한 농부이자 선구자였다"고 고인을 평가했다.
이어 "그는 흔히 한국의 보수 기독교계가 비판하듯이 '인본주의적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하는 단순한 사회윤리학자가 아니었다"며 그 이유에 대해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장공 김재준(개혁파 교회의 신학적 전통), △라인홀드 니버(유럽의 복음주의 신학계통), △폴 틸리히(성서적 근거와 신학을 갖고 복음 변증) 같은 학자는 소위 말하는 유럽과 미국의 '인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신학'을 비판 극복했으며, 동시에 '신본주의적이고 보수 정통주의 신학'을 극복한 대사상가들이었기 때문이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여해가 말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에 대해 그가 말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교회의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을 교회의 기본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라는 대목을 가리키며 "우리가 이 점을 놓친다면 진정한 에큐메니컬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신과 목적을 이루는 3가지 요소인 교회 일치와 연합, 복음 전도와 선교, 사회봉사와 증언 가운데 세 번째 과제에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여해 강원용 목사는 그의 성장기부터 내재화된 주체적이고 내면적인 신앙을 들여다보면 '보수적인'이라고 할 만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의 신학, 특히 에큐메니컬 신학은 매우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며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다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그는 강원용 목사가 1965년 10월 한국 6대 종단의 지도자들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이도록 한 자리를 들며 "한국 제종교의 공동과제 대화모임을 열었었고 이 모임을 계기로 '한국종교인연합회'가 결성되어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 세력이 주류를 이루는 기독교계에서는 강원용 목사의 이런 시도를 '종교혼합주의'라는 터무니없는 편견으로 바라보았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한국 전파 기지국' 여해
한국 신학계에서 흔히 회자되는 말 중에 '서남동 교수는 세계 신학의 안테나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계 신학계의 동향을 빠르고 정확하게 한국 신학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김경재 교수는 "이런 평가에 견주어 '강원용 목사는 WCC 에큐메니컬 운동의 한국 전파 기지국이다'라는 은유적 표현도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올해 10회를 맞은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의제를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1970년대 중반까지 '책임사회론-책임 사회에 대한 비전'을 이후 1975년 WCC 제5차 나이로비 총회부터 올해 부산총회까지 '지속 가능한 사회에 대한 비전'으로 나늰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라져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시대사황에서 이게 양극단을 선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아니다. 우리는 어느 정치체계 하에 있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아래 어떤 것이든 고를 책임이 있다는 것이 여해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용공주의자로 오해를 받았고, 반공이 아니면 용공이란 이분법적 사고에 여해의 생각은 부정확한 판단에 몰렸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김 교수는 특히 "지속 가능한 사회는 정의, 자유, 평등뿐 아니라 지구 전체가 새로운 위기 생태에 오염문제를 실감하면서, 문명사회 자체가 존속이 가능한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정치든 종교든 군사문제든 지속가능한 비전을 가지고 서로서로 지혜를 모아 논하자는 것"이라며 "이 비전은 지나가버린 화살이 아니라 지금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도 필요한, 본격적으로 심도있게 논의해야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 여해가 영향준 한국 종교계와 사회 그리고 '사이와 너머'
김경재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강원용 목사는 늘 경동교회라는 크지 않은 기독교회 공동체를 뿌리로 삼고, 크리스챤아카데미라는 기독교 사회교육 기관을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의 최전선 지휘본부'로 삼아 대부분의 활동을 했다.
이 말은 강원용 목사가 크리스챤아카데미라는 사회교육 기관을 십분 활용하여 그가 말하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혹은 '장소적 현장성 속에서의 일치'라는 문제를 풀어갔다는 뜻이며, WCC 창립정신의 기초가 된 '복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화두를 한국 상황에서 크리스챤아카데미를 매체로 삼아 실천했고 실험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언제나 그렇듯이 인물 평가에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고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적어도 WCC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20세기의 매우 중요한 세계적 운동과 비전을 한국사회와 교계에 소개하고 펼쳐보려고 노력했던 인물로서 그보다 더 많이 공헌을 한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고인을 평가했다.
그는 "강원용 목사의 활동에 대한 비판자들의 논지는 '사이·너머(Between and Beyond)'를 지향하려는 강 목사의 의도나 취지는 좋았지만, 양극단적 입장을 지닌 집단들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현실로 고양(高揚)시키는 노력과 결과가 끝내 달성되지 못했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오해에서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2013년 제10차 WCC 부산 대회를 앞둔 지금 WCC 에큐메니컬 운동은 기독교윤리학의 용어로 말했을 때 '규범주의 윤리'가 아니라 '상황주의 윤리'를 더 지지한다"면서 "성경을 기본 텍스트(text)로 삼지만 항상 콘텍스트(context)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텍스트의 참뜻과 구원의 능력을 오늘 여기에서 되살려내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무엇보다 강원용 목사의 사회윤리적 관점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영원한 복음과 인간 상황을 상관관계 속에서 파악하되, 라인홀드 니버의 '크리스천 리얼리즘'의 사회윤리적 입장에서 '사이와 너머'를 추구하려고 했던,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가능성'을 개척하는 모험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김재경 교수는 "고 강원룡 목사는 극좌나 극우가 아닌 제3의 길을 제시하고 그 길을 가자가 아니라, 그 것마져도 또 다른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음을 알았다"며 "제3의 길이 아니라 끊임없는 영원의 프로세스. 상호 비판과 상호 성찰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