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서민들은 소득은 적은데다가 설상가상으로 폭염과 전세난으로 더욱 살기 어렵다고 한숨 짖는다.
옛날 그 옛날 성경 첫 머리의 창세 때부터 인간의 삶은 녹녹치 않았다. 평생 땀 흘리며 수고하여야 하고 해산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 방랑자처럼 떠돌아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고 쫓겨 날 때부터 세상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멀리 가지 못하고 에덴동산의 동편에서 살림을 차리고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큰 아들 가인은 농사꾼이 되었고, 동생 아벨은 양치는 자였다고 한다. 이들이 자란 후 여호와께 첫 제사를 드릴 때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가인은 땅의 소산(곡식이나 과일)으로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는 아벨의 제물은 좋게 여겨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가인은 들에서 동생 아벨을 쳐 죽였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된 것이다.
루벤스의 <아벨을 살해하는 가인>을 보면 동생을 죽이는 가인의 분노에 찬 얼굴이 섬뜩하다. 저 멀리 아벨이 드린 제단의 모습이 보인다. 왼 손으로 아벨의 목을 틀어잡고 오른손으로 힘껏 치는 찰나이다. 살인 도구는 유럽 문학에서는 통상적으로 짐승의 턱뼈로 그린다, 오른 손을 높이 든 아벨의 모습이 애처롭다. 이 그림이 소장된 코톨드 미술관은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가진 런던의 아담한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에서 살게 되었다. 놋(Nod)은 본래 "유랑"이라는 뜻으로 이 때 부터 인간은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이 시작 되었다.
성경을 놓고 우주창조의 신비한 과정과 에덴동산이라는 이상향에 잠시 취하다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오면 갑자기 가슴이 콱 막히고 답답해진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인간의 첫 작품이 근친 살인사건이란 말인가? 그 분은 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는지 명확한 설명도 없다.
그 분은 아벨의 제사는 기쁘게 받으셨는데 바로 그 일로 인해 착한 아벨이 죽게 되다니 혼란스럽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야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다니 일찍 말리지는 못하였을까?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에도 그 분은 가죽옷을 지어 입혀서 세상에 나가 살 때에 잘 보호되기를 원하셨는데 형제간의 불화로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어떠했을까?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인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의 <첫 번째의 비탄/아벨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담과 이브>를 보면 마치 성모가 죽은 예수를 안고 오열(嗚咽)하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Pieta)와 같이 아들의 죽음에 대해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 아벨(히브리어로 헤벨, לבה))이라는 이름에는 '허무(虛無)'라는 뜻도 있지만 이렇게 인생이 무상(無常)한가 하고 넋이 나간 모습이다.
이해하기 힘든 명제들을 놓고 우선 구약성경의 권위자인 교수의 주석서를 찾아보았다.
"하나님께서 원시시대부터 생축을 제물로 제정하셨다. 아벨이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명하신 대로의 제물을 믿음으로 드려 열납 되었다"
그런데 레위기에 보면 가난한 사람은 양이나 염소 대신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그리고 떡이나 곡식가루도 드릴 수 있는데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드린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태신앙인 나의 청년시절은 이런 갈급(渴急)함으로 언제나 목말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창 인기가 있던 제임스 딘 주연 영화인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을 보게 되었다. 엘리아 카잔 감독의 이 영화는 원래 존 스타인백 원작의 소설(1952년)로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에덴의 동쪽 놋땅으로 도피하였다는 구약성서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 아담 트라스크는 두 아들 중 신앙심이 두텁고 모범청년인 아론은 사랑하지만, 성격이 거칠고 언제나 불만에 찬 눈초리의 카알(제임스 딘 분)은 가족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간 어머니의 부도덕한 피가 흐른다고 미워하였다. 두 형제는 아름다운 처녀 애브라를 두고 질투하며 싸운다. 그러나 애브라의 간곡한 설득으로 아버지와 카알이 극적으로 화해한다는 줄거리이다.
이영화의 원작소설을 탐독하면서 존 스타인백도 창세기 이야기가 답답했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마을 보안관이 "죄를 지은 가인은 에덴을 떠났는데 왜 너는 떠나지 않느냐"고 카알에게 모진 말을 했지만 애브라를 등장시켜 아버지와 화해를 시키고 보편적인 사랑의 힘을 보여 주다니! 창세기의 결말보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 맘 때쯤에 김진규와 문희가 주연을 한 한국영화 '카인의 후예'가 있었다. 유현목 감독의 이 영화(1968년)는 황순원 원작(1953년)으로 역시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테마로 하고 있다.
해방 후 북한의 토지개혁 소용돌이 속에서 득세한 늙은 마름인 도섭영감이 평생 주인으로 모셨던 지주의 아들 박훈에게 낫을 휘두르는 광기 속에서 도섭영감의 딸 오작녀가 신분과 이념을 초월한 사랑으로 살인을 막았다는 줄거리이다. 평양숭실학교를 나온 황순원도 존 스타인백처럼 성경과는 다른 결말로 장식했구나 하는 놀라움이 있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요 풍자가인 바이런 경(Lord Byron 1788-1824)은 '가인(Cain)'이란 희극에서 가인은 피비린내 나는 인격의 상징이고, 아벨은 믿음이 독실한 채하는 위선으로 남을 자극하여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인격으로 묘사한 것을 보면 그도 가인에게 다소 동정적인 면이 있다고 보여 진다.
또한 윌리암 섹스피어(1564-1616)의 유명한 희극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The Merry Wives of Winsor)'에서는 가인의 붉은 머리와 가인 특유의 수염을 강조하고 있음을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인의 붉은 머리와 수염은 성서화 역사로 보면 오래된 전통이다.
중세 기독교 미술, 특히 16 세기 독일에서 가인은 판에 박은 듯한 곱슬머리에다가 수염이 덥수룩한 유대인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반면에 아벨은 금발머리로 그렸는데 이는 유대인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전통적 묘사는 그 후 수 세기 동안 계속 되었다.
19 세기 프랑스 화가인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1836-1902)는 유대인의 시각에서 본 성서화를 많이 남겼는데 그의 <가인이 아벨을 죽이려고 데려감>이란 작품은 중세의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우람한 체격의 가인이 유난히 심한 곱슬머리와 붉은 수염을 한 악한 모습으로 살인도구를 들고 아벨의 손을 붙잡아 이끌고 있으며 아벨은 금발머리의 착한 모습으로 고개를 뒤로 넘긴 채 힘없이 끌려가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중세 성서화부터 아벨이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구도가 나았는데 거기까지의 성경적 근거를 찾아보았다.
먼저 창세기 기사를 주의 깊게 다시 읽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과 그 제물(Cain and his offering)은 좋게 여기지 않아 받지 않으셨다"고 되어 있다. 제물만 받지 않은 것이 아니고, 먼저 오래 동안 살펴 본 가인이라는 인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슨 제물을 드렸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고 분하여 안색이 변하는 태도와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하는 뻔뻔스러운 인격을 받을 수 없으니 그가 드린 제물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폐부(肺腑)와 중심을 보시는 그분은 제사보다 사랑과 자비의 인애(仁愛 Hesed)를 원하고, 번제(燔祭)보다 겸손한 모습의 상한 심령(broken spirit)을 더 바라셨다. 제사 도중에 친구와 불화(不和)한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목한 후에 제사 드려야 한다는 것이 제사에 대한 가르침이다
아벨에 대하여는 성서 후반의 신약성경에서 그 모습이 분명히 들어난다. 예수는 아벨을 "의로운 자"로서 최초의 순교자라고 가르쳤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의 피와 예수의 흘린 피를 동일한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지금도 에덴의 동쪽에서 살고 있다. 가인의 후예로서 원죄(原罪)를 안고 살지만 아담이 추방된 에덴동산을 그리며 살고 있다. 이럴게 팍팍한 이생에 살면서도 그 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죄 많은 선조를 내쫓은 그 분의 분노를 누가 잠재울 수 있단 말인가?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에서는 오작녀가 아비의 낫을 막았으며, 존 스타인백의 '에덴의 동쪽'에서는 애브라가 가엽고 불쌍한 카알을 아비의 품속에 안겨 주었다.
소설 속의 오작녀와 애브라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아 화해시킬 광야의 초인은 없는가?
그 분은 단 한 분이 있다. 성경이 우리에게 소곤거리며 들려주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시다. 죄 없이 죽은 아벨처럼 그 분도 죄 없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이다.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어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