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탄두에 사용하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을 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다. 미국 대선을 50여일 앞두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 향후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3일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와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 지도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해 비약적인 성과를 내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HEU 생산시설을 최초로 공개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고농축 우라늄은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핵심 물질이다. 그걸 공개한 건 북한이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고 당장이라도 핵탄두를 생산할 능력을 갖췄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또 최근 대규모 수해 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의 불만을 ‘핵무력 발전’ 성과로 덮으려는 속셈이 엿보인다. 정작 주목할 점은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 대미 협상용 포석일 것이란 해석이다.

북한은 지난 2010년 미국 핵물리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내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그 때도 HEU 생산시설만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랬던 북한이 핵무기 생산 기반인 HEU 시설을 스스로 공개한 건 분명한 의도와 목적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정은이 현지 지도한 시설이 구체적으로 북한 내 어느 장소인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된 게 없다. 미국이 비밀 핵시설로 지목해온 평양 인근 강선 단지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고 기존 영변 핵시설이나 아니면 제3의 장소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추정이 나오는 건 북한이 HEU 생산시설 내부를 압축해 공개했을 뿐 그곳이 어디인지에 대해선 철저히 함구했기 때문이다.

공개한 사진에는 핵탄두를 만들 때 사용하는 물질인 농축 우라늄 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와 관련한 여러 장치들이 빽빽이 들어차있다. 이런 사설을 북한이 공개했다는 건 고농축 우라늄 제조 능력, 즉 핵무기 생산 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 김정은이 호언장담한 대로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를 보여주려는 게 첫 번째 목적일 것이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1980년대부터 영변 등 핵시설 가동을 통해 핵물질을 생산해 온 것으로 볼 때 상당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대 1만개 원심분리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보통 핵무기 1개를 만드는 데 약 15~20kg의 고농축 우라늄이 사용되고 약 750~1000개의 원심분리기를 1년 동안 돌려야 한다고 가정할 때 북한의 핵무기 생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건 왜 북한이 지금 이 시점에서 그동안 감춰두었던 핵시설 내부를 공개했는가 하는 점이다. 자기들이 상당한 핵무기 생산 보유 시설을 갖고 있다는 걸 대내외에 과시하는 의도가 분명하더라도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이냐는 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 대선 등 복잡한 국제관계를 겨냥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사실 김정은이 현지 지도에 나선 핵관련 시설이 북한의 어느 지역인지, 또 언제 시찰을 했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인지 오래 전에 있었던 걸 특정한 시기에 맞춰 공개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김정은이 사찰한 날이 언제였든 지금 이 시점에서 공개한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지난 13일은 미국의 대선이 50여일 앞둔 날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현 부통령이 치열하게 경합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국제사회에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은 시기다. 향후 북핵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계산이 깔려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의 대외 핵 협상 전략이다. 과거에 미국 정부와 유엔 등에서 거론했던 ‘비핵화’가 아니라 ‘핵 군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스스로 핵시설 내부를 공개한 것도 당당히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계산된 포석인 동시에 미국의 차기 정부가 ‘비핵화’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하려는 압박으로 비친다.

이런 북한의 당당한 태도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발표한 정강정책에 ‘북한 비핵화’라는 단어가 자취를 감출 때부터 예견됐던 문제였다. 공화당은 물론 4년 전 정강정책에 ‘북한 비핵화’를 명시했던 민주당까지 북한 비핵화가 슬며시 사라지면서 결국 북한이 노리는 ‘핵 보유국’ 용인 분위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었다.

북한은 핵탄두를 만드는 데 쓰이는 HEU 제조 시설을 공개한 뒤 탄도미사일을 쐈다. 민족의 명절 추석을 전후해 도발을 이어나가고 있는 북한이 핵 시설을 공개한 것을 놓고 7차 핵실험을 예고한 것이란 관측이 있다. 우리 정부도 핵 도발의 전조일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미 대선에서 북핵 이슈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해리스 둘 중 누가 당선돼도 북한이 의도한 대로 풀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북한이 실제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이를 미국 등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의 핵무기를 상대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생존이 걸린 매우 위급하고 절박한 현실이란 점에서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당장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여론이 분출하는 상황에서 북핵에 대응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한미군사동맹은 물론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군사안보 선택 카드를 다양화하는 지혜가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안보의 최종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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