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최근 중국 영화와 드라마를 '불순 녹화물' 목록에 포함시키고, 중국의 역사관 관련 내부 강연 녹음물의 유포를 차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북중 관계의 미묘한 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함경남도의 한 주민 소식통에 따르면,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북한 당국이 새로운 '불순 녹화물' 목록을 하달했다. 이 목록에는 기존의 남한 노래,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인도, 러시아 영상물과 함께 중국의 텔레비전 연속극과 영화 수십 편이 포함됐다. 소식통은 "중국 녹화물의 금지 목록이 나온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금지 목록에 오른 중국 영상물 중에는 '양산백과 축영대', '남자의 매력', '상해에 온 사나이', '무예전', '형사경찰' 등 홍콩이나 중국에서 제작된 작품들이 포함됐다. 이들 작품은 그동안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유통되던 것들이다.
더불어 북한 당국은 최근 각급 당 조직과 사법기관에 '중국의 역사관'과 관련한 강연 녹음물을 주민들이 듣거나 유포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비준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선시의 한 주민 소식통은 이 강연 녹음물이 주로 당 위원회, 인민위원회, 검찰소, 안전부 등 군급 기관 이상의 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강연 내용은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 소수민족이 세운 나라로 주장하고, 조선옷과 김치 같은 문화의 기원을 중국이라고 우기며,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 역사를 축소하려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조치로 인해 북한 내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소식통들은 이러한 지시가 북중 관계의 악화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경 세관이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은 점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조치와 관련 한 탈북단체 관계자는 "북한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이며, 동시에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하고, "향후 북중 관계의 변화와 북한 내부의 문화 정책 변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것"이라고 전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