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도신경을 암송하면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를 참 오랫동안 되뇌어 왔다.
필자는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재판 장면을 읽을 때 마다 수수께끼 같은 궁금증이 따라 다닌다.
빌라도 총독의 속내는 어땠을까? 십자가형 선고는 불가피 했을까? 내가 그 당시 현장에 있었다면 어느 쪽 일까? 그리고 과연 우리가 이렇게 자주 빌라도를 저주해도 되는가 하는 연민이 있다.
이런 저런 상념이 교차할 때쯤엔 나는 평생 잊지 못할 나의 스승 김정준(金正俊 1914-1981) 목사님을 생각한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에 목사님은 한국신학대학 학장을 사임하고 연세대학 교목실장 겸 신학대학 교수로 부임하셨다. 김정준 목사님은 평양 숭실학교와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신학을 한 후 국내에서 교회를 섬기던 중 결핵으로 마산국립요양원에 입원하였다. 살아날 희망이 없다는 결핵 6기 판정을 받았으나 폐 한쪽을 들어내고도 기적적으로 회복하신 분이다. 2년 반 동안 병석에서 구약시편을 암송하였고 퇴원 후 에딘버러대학에서 시편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설적인 목회자였다.
교수님이 담당하시던 교양과목인 '성경'을 수강하던 그 해 6월 어느 날 교수님이 나에게 이번 주일 날 대학교회에 꼭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신촌에서 하숙하던 시절이라 주일 날 교수님이 설교하시던 대학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나는 그날 '빌라도를 변명한다는 이야기'라는 목사님의 설교재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한 달 전에 내가 과제물로 제출한 '빌라도를 변명한다'는 내용을 주제로 설교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그 리포트에 쓴 것은 우리가 주일마다 암송하는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신앙고백을 하는데 나의 죄 때문이 아니라 모든 죄를 빌라도 총독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요지로 빌라도를 변명한 글이었다.
그 때 내 리포트에서 빌라도를 변명한 내용은 모두 사복음서에 기록된 내용들로 구성하였다.
1.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였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이러한 무죄선언은 누가복음에서 3회 등 사복음서 마다 언급되어있다.
2. 빌라도는 예수를 석방하고자 하였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하고 석방의지를 여러 번 표명하였다.
특히 유대 명절에는 사면권을 행사하는 관행을 이용하여 예수 석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무지한 유대인들은 반 로마운동 주동자인 바라바(Barabbas)를 택했다.
3. 빌라도는 예수를 죄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 아내의 간곡한 권고를 수용하였다.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마옵소서" 하였다. 그의 아내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질녀인 크라우디아(Claudia Procula) 라고 전해지고 있다.
4. 빌라도는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받아 들였다.
빌라도는 심문 할 때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다. 예수는 이를 시인하면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하여 산헤드린에서 고발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하였다.
유대 지도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에 붙이니 유대인의 왕(I.N.R.I) 이라 기록하였더라."
5. 빌라도는 재판관할권을 이유로 스스로 재판을 회피 하고자 하였다.
즉 예수가 갈릴리 사람임을 알고 헤롯왕 관할에 속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헤롯에게 보냈다. 빌라도와 헤롯은 서로 라이벌 관계여서 상대방에게 양보 하기 어려운데. 빌라도는 양심에 반하는 재판을 모면하고자 했다. 그러나 헤롯과 군인들이 조롱하므로 묵비권을 행사하는 예수를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다
6. 빌라도는 마지막으로 공개적으로 손을 씻으며 양심의 내면을 보여준다.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 지어다" 하였다.
두초(Duccio)의 <손을 씻는 빌라도>를 보면 빌라도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손을 씻는 행위는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행태라고 비판 하는 국내 목회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분명히 그렇지 않다. 그것은 무죄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에 자신이 관계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유대인의 관습이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의 관습을 되돌려 준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그리스도에게 죄를 찾을 수 없다는 빌라도의 소신을 보여 준다. "이 사람의 피"는 어떤 사본에는 "이 옳은 사람의 피"라고 되어있다.
7. 더구나 그때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그의 말년이 천벌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빌라도 부부가 순교자의 일원으로 천국에 들어갔다는 외경(혹은 위경)도 있고, 에디오피아 교회에서는 성인성녀로 추앙하고 축일가지 지키고 있다는 내용들도 리포트에 함께 적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나는 그날 이후 학교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교수님 방에서 조교처럼 교수님 곁을 지키게 되었고 교수님은 내 결혼 주례까지 맡아주셨다.
그 때 이후 나는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면 '본디오 빌라도'대신에 '나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리포트를 쓴지는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성경을 읽을 때마다 빌라도 재판 부분에 오면 나름대로 처연(凄然)한 미스터리(mystery)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죄 없이 흘린 예수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고 한 부분이다.
핏발 선 눈으로 소리치던 함성은 메아리가 채 사라지기 전 그들의 당대인 A.D.70년에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무자비하게 함락되었다. 처절한 몸부림을 쳤지만 3년 만에 마사다(Masada)에서 열성당원까지 전멸하고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diaspora)가 되어 2000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며 나라 없는 백성으로 멸시를 당하였고, 근세에는 히틀러(Adolf Hitler)에게 약 600만 명이 학살된 홀로코스트(Holocaust)란 참혹한 역사를 기록하였다.
무지한 다짐치고는 너무 끔찍한 결과여서 성경 미스터리로 연결시키고 싶지 않을 뿐이다.
둘째로는 예수재판 때의 빌라도의 질문이 가슴을 파고든다.
진리(眞理)가 무엇이냐? (What is truth?)
당신은 어디로부터 왔느냐? (Where do you come from?)
유대 군중의 한 사람으로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렀던 우리가 아닌가?
지금이라도 우리는 빌라도가 심각하게 물었던 질문을 곱씹으면서 살아야 할 명제(命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어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