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인재를 키우는데 는 시간이 걸립니다. 처음부터 완성된 지도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성장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주신 하나님께서 모세의 고난을 1년으로 줄일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다만 모세에게는 40년이 필요해서 40년의 광야생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도 필요하기에 고난을 주시고 필요하기에 외로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견디고 누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유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급하여 기다리지 못하고 정해 놓은 시간 안에 얻으려고 합니다.
피에르 랜치니크가 "고아가 세계를 주도한다."는 책을 썼습니다. 역사를 주도했던 위인 중에 고아가 많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대통령 퐁피두. 루즈벨트, 알렉산더, 시저, 조지 워싱턴,나폴레옹, 루소, 데카르트가 고아였습니다. 모세, 사무엘도 부모의 직접적인 양육 없이 자랐습니다. 인류 문화사에 영향을 미친 300명의 위인들이 고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빨리 죽는 것이 낫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랜치니크가 말하는 핵심은?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의 상실만큼 큰 시련도 없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상실의 아픔을 겪은 아이 중에 인물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역경이 인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고난에서 창조적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급하지 않게 고난을 접하는 사람은 고난의 유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왕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그 고난 속에서 힘을 얻어내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그런데 고난이 주는 축복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라봄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 중에는 멀리 있는 약속을 바라봅니다. 고난은 긴 시선을 가져다줍니다. 긴 시선은 걷는 발걸음에 속도를 더해 줍니다. 그래서 멀리 바라보고 뛰는 사람이 되게 만듭니다. 그러나 짧은 시선이 인생의 역동성을 잃게 만듭니다. 가속이 붙지 않는 인생을 살게 만듭니다.
인생에는 끌려가는 인생과 달려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짧은 시선은 사람들로 하여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짧은 시선의 사람을 억지로 일하게 만들면 끌려가게 됩니다. 반면에 먼 시선을 가진 사람은 달려가는 탄력으로 왠 만한 장애는 뚫고 갈 수 있는 돌파력을 지니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합니다. 경기 침체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당할 고난이라면 그 고난 속에서 창조적 에너지를 뽑아내야합니다. 그리고 고난이 주는 긴 시선으로 탄력이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눈앞에 놓인 장애를 뚫고 가는 돌파력의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