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닌 드볼작(Antonin Dvorak)은 신세계 교황곡으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이다. 체코출생답게 보헤미안적인 음악을 세계적으로 만든 음악가이며, 스메테나와 함께 민족주의음악가로 분류된다. 그는 일생 대부분을 프라하에서 목가적 생애를 보내다 1892년의 51세 때 뉴욕의 국민음악원의 원장으로 초빙되었다. 이때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와 현악 4중주곡 '아메리카'를 작곡하였다.
드볼작은 베토벤이나 모짜르트와 같은 천재형 음악가는 아니지만 일생 경건성을 잃지 않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한 흔치 않은 음악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극히 가정적인 사람으로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였다. 온 집안을 뛰어 다니며 소란을 떠는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으며, 그의 아이들은 언제든지 그의 서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성경읽기를 좋아하여 현대어와 고대어의 첵코성경책은 물론 몇 권의 영역본 성경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가 여행중에는 자녀들에게 교회에 잘 나가고 열심히 기도하라는 격려의 편지를 보내곤 하였다 하니 그의 신심의 일단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특이한 작곡 기술을 하나님이 영감을 준 것이라고 보았으며 자신은 단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라고 한 것을 했을뿐이라고 말하고는 하였다는 것이다. 신세계 교향곡을 쓰게된 배경은 이렇다. 뉴욕의 찌는 듯한 한 여름에 그의 고향 프라하에 향수에 깊이 빠져들었을때 아이오아 주에 체코이민자들이 모여사는 Spillville에서 얼마동안 지나게 되었다. 한적한 시골, 스필빌에서 그는 미국에 도착한 이후 자신을 놀라게 했던 미국의 모든 이미지들과 인상들을 정리하여 작곡한 것이 '신세계'였던 것이다. 그 제 2악장이 우리가 즐겨 부르는 "그리운 고향"인 것이다.
"Going home, going home I'm a going home, Quiet like, some still day, I'm just going home, It's not far just close by, Through an open door Work all done, care laid by, Gwine to fear no more, Mother's there specting me, Father's waiting too. Lots o'folk gather'd there, All the friends I knew. All the friends I knew. Home-Home- I'm going home. Nothing lost all's gain, No more nor pain"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아 지금은 사라진 친구들 모여 옥 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반딧불 좋아서 즐거웠건만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그리운 고향 아 아- 내 고향- 밤하늘에서 별들이 반짝일 때면 영혼의 안식처 찾아 헤매네, 찾아 헤매네 밤마다 그리는 그리운 고향 영혼의 안식처 찾아 헤매네 그리운 고향 내고향"
드볼작에게서도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물씬 묻어나는 것은 인간이라면 고향을 그리워 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본성임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드볼작은 신세계의 경이감 속에서도 고향의 꿈을 숨기려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