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청와대 회동 무산 여파로 신구(新舊) 권력 간 갈등 논란이 일고 있자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측이 한발씩 물러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18일 윤 당선인과 빠른 시일 내에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윤 당선인 측도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에 양측 간 갈등의 원인이었던 인사와 사면에 대한 이견을 해소할 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불과 며칠 전 만해도 회동 의제를 놓고 이견 끝에 불발됐던 것과 사뭇 다른 양측의 입장 선회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국민통합 저해와 국론 분열을 우려한 국민 정서를 의식해 양측이 물러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6일 돌연 연기된 뒤 지지부진했던 회동 조율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여 회동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윤석열 당선인과 빠른 시일 내 격의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면서 "무슨 조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청와대의 문은 늘 열려있다"고 언급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회동 실무협의를 빨리해달라는 지시냐, 상관없이 당선인과 만나자는 것이냐'는 질문에 "양쪽 다 해당될 거 같다"며 "이철희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긴밀히 협의하는 걸로 안다"고 답했다.
양측은 그간 회동 조율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과 한국은행 총재 및 감사위원 인선, 공공기관장 인사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조율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한 만큼 윤 당선인의 의지만 있다면 관례와 상관없이 더 빠른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박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참모진에게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국정운영 방안에 대해 개별적 의사표현을 하지 말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윤 당선인과의 회동을 앞두고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이나 잡음을 일으키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이 이같은 입장을 밝히자 윤 당선인 측은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은 청와대 만남과 관련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며 갈등설을 부인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오후 언론공지를 통해 양측이 지속적인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국민들 보시기에 바람직한 결과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이 지연될수록 통합과 협치를 기치로 내건 윤 당선인의 행보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는 여론을 수용하는 기류다. 문 대통령의 호의에도 윤 당선인이 어깃장을 놓고 있다는 여권의 거센 비판을 차단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듯하다.
◆문재인, 참모진에 당선인 언급 자제…"대화 문 열려 있다"
문 대통령은 참모진의 당선인 측 언급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당선인 측의 인사와 사면에 대한 요구에 참모진들이 입장을 내놓은 것은 회동 무산에 따른 갈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 대통령의 지시는 탁현민 의전비서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언 등 당선인 측을 겨냥한 참모진들의 비판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탁 비서관 논란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앞서 탁 비서관은 전날 SNS에 "비서동에서 대통령의 집무실까지 올라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 된다"고 한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의 발언을 두고, "(비서동에서 집무실까지) 뛰어가면 30초 걸어가면 57초로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비아냥했다.
이에 국민의힘 측은 "폐쇄적이었던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는 당선인을 일본에, 국민을 왕정 시대의 신민으로 비유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 지시 전날인 17일 청와대 직원들에게 "당선인 측 공약이나 정책,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언론에 개인적인 의견을 올리거나 언급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기 바란다"며 확전 자제령을 내렸다. 탁 비서관도 논란이 일던 SNS 게시글을 자진 삭제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임명 등 인사 이견 해소로 회동 돌파구 관측도
문 대통령 측과 윤 당선인 측 사이에서 갈등이 확산되던 시점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자, 인수위 주변에서는 민감한 인사를 놓고 양측이 잠정 합의에 이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회동 의제 조율과정에서 이견을 빚은 것으로 알려진 한국은행 총재, 감사원 감사위원 등 인사 문제에서 당선인 측 의견을 청와대가 존중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특히 차기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많이 거론돼온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에 대해선 당선인 측이나 청와대에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퇴임이 두 달 정도 남은 문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되 차기 정부를 이끌어갈 윤 당선인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갈등을 봉합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2008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을 2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의견을 수용해 어청수 경찰청장을 임명한 방식과 비슷하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측이 이같은 전례를 따르면서 회동 성사의 돌파구가 마련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양측이 인사 문제 등에서 이견을 해소할 경우,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청와대 회동은 이르면 주말에 시점을 발표한 후 다음 주초 성사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인수위는 청와대와 인사 문제와 관련된 의견을 전달하거나 협의가 있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김은혜 대통령당선인 대변인은 언론공지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인사와 관련해 청와대에 어떤 분도 제안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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