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연합감리교회 김세환 담임목사

한국에서 대학을 갓 졸업하고 미국에 오셔서 신학교 교수가 되신 분이 있었습니다. 미국 사람들 하고만 사십여 년이 넘게 지내셨기 때문에 말이나 생활방식이 한국 사람보다는 미국 사람에 더 가까웠습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가 한국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예배 중에 기도시간이 되었는데, 여자 성도님 중의 한 분이 앞에 나와서 대표기도를 했습니다. 그녀는 기도의 시작을 이렇게 했는데 그 문구가 너무도 아름답고 심오했습니다. "우리를 당신의 눈동자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표현이 가슴에 살갑게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그 '눈동자'라는 단어를 자기도 언제고 대표기도 시간에 써먹으려고 기억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더 편했기 때문에 '아이 볼(eyeball)'이라고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구를 써먹을 기회가 너무도 빨리 오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인 이민교회에서 교수님께 설교를 부탁한 것입니다. 교수님은 강단에 서서 교인들에게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고 말하면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기억해 두었던 그 문구로 기도를 시작하려는데, 그만 '아이 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눈동자'라는 말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에 몰리게 되자 교수님은 궁여지책으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를 당신의 '눈아알'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동자(ball)'나 '알(ball)'이나 같은 뜻이지만, 듣는 청중들에게는 전혀 다른 어감으로 들렸습니다.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며 웃음을 참는 사람들 때문에 교수님은 결국 그 날 설교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느 교수님의 경험담입니다.

살다보면 '말 한마디'나 '단어 하나' 때문에 곤경을 치르기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은 앞으로의 정치 방향을 묻는 원로대신들에게 먼저 기선을 잡으려는 의도로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 내 아버지의 정치를 감당할 수 없는 짐이라고 생각한 너희들에게 내가 진짜 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 내 아버지가 가죽채찍으로 너희들을 때렸다면, 나는 이제부터 너희를 쇠채찍으로 때리겠다!"

이 순간이 이스라엘이 둘로 나누어지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생각보다 악한 왕도 아니었고 쇠채찍을 휘두른 적도 없습니다. 단지 '눈동자'를 '눈알'로, 그리고 좀 더 강인하게 '눈깔'로 표현한 것뿐입니다. 다같은 소리인데, 표현의 차이가 민족을 둘로 나누는 '아픈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말이 참 쉬우면서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진짜 온전한 사람"(약 3:2)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동자'와 '알'의 차이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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