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며 관심이 쏠렸던 부처가 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입니다. 그 신설되는 부서의 장관으로 김종훈 씨가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도 시작해 보기 전에 고국의 매서운 정쟁에 고개를 떨구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저는 정치적인 이야기는 배제하고 싶습니다.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김종훈 씨가 미국에서 어렵고 힘든 시기들을 보내며 자수성가하여 미국의 400대 재벌 안에 들 정도로 성공했고, 그런 위치에 있음에도 고국의 부름 앞에 '어떤 희생도 감내하고라도 고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을 때는 속이야 어찌 됐든 감동적이기 까지 했습니다.
고국을 떠나 미국에 몸을 의탁하고 살아가는 필부이기에 더욱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신분을 포기한다는 것, 자신의 재산 가운데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세금을 감수하겠다는 것,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국을 위해 일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감당해 보겠다는 것 등등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보지 않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그런 결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야 스스로 후보를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만 혹 당신에게도 이런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 해보고 싶은 일은 있으십니까?
나는 김종훈 씨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속내야 어떤지 모르지만 '아 정말 고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이 없이 자기 것을 희생하고, 포기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고생하며 쌓아 올린 것이 무엇이든 하찮고 가치 없게 여길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고난 주간의 시작입니다. 여기 진정한 사랑 때문에 자기 위치도 버리고,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내어주기 위해 죽음의 길을 가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입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만유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세 전에도 그랬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행하심은 이미 갈릴리뿐 아니라 예루살렘, 사마리아 이스라엘 전역으로 퍼졌고 따르는 무리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 주님이 마지막 죽음을 향한 길에 찾으시고 부르신 것이 있습니다. 묶여있는 '어린 나귀'였습니다. 왜 주님은 하고많은 탈것 중에 묶인 '어린 나귀'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가시는 길이 '평화의 길'이었기 때문에 보여주시는 상징적 의미도 있겠습니다. 당시 빌라도가 어린 나귀가 아닌 큰 말을 타고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또한, 주님은 세상에 쓸모없어 보이고 아직 준비되지 못한 어린 나귀를 부르셔서 주님 인생에 가장 마지막 순간, 귀한 시간에 사용하시는 모습은 지금 나와 여러분을 향한 부르심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김종훈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부름에 인생을 걸려고 했습니다. 필자도 세상에 묶여 아무것도 인생에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을 때 주님은 부르셔서 동역자로 삼아 주셨고 지금까지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전능하신 주님은 지금 나를 위해 마지막 죽음의 길을 가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이 부르심이 당신을 부르시는 소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 고난 주간에 '주님의 가신 고난에 동참하겠노라'는 형식적인 고백에 앞서 주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음성부터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그 고난의 길에 '함께 가길 원합니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이 시간 주님이 당신을 쓰시겠다 부르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무늬만 크리스천이든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의 삶은, 예수님이 쓰실 때 가장 가치 있고 빛난다는 것을 경험하시는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